감정평가

Vol.145 SPRING 2022

똑똑 부동산 핫이슈

영끌족을 위한 변명

글. 오진주 기자(e대한경제신문 부동산부)

저는 올해 7년 차 부동산부 기자입니다. 동시에 요즘 부동산 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영끌족’이기도 하죠.

저는 지난해 내 집 마련에 도전했습니다. 정부에서 영혼까지 대출을 끌어모아 집을 사는 20~30대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은 대출)족에게 나중에 후회할 수 있다며 경고를 날렸지만 저 또한 듣질 않았습니다.

이제 저의 내 집 마련 과정을 이야기해드리고자 합니다.

시작은 단순했습니다. 16년 전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월세와 전세 등 다양한 형태의 원룸에 살았던 저는 이제 방이 아닌 공간이 분리된 집에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갈 곳은 아파트밖에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어설프게 듣기로는 빌라는 값도 잘 오르지 않고 환금성도 높지 않기 때문에 모든 주거 상품의 정답은 ‘아파트’라고 들었기 때문이죠.

아파트를 사기로 결심했다면 이제 내가 조달할 수 있는 자금을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당시 전세로 오피스텔에 살고 있었습니다. 지금 갖고 있는 전세 보증금에 대출을 받아 보태면 소형 아파트 하나는 살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 들었죠.

그렇다면 어떻게 돈을 빌려야 할까요? 앞으로 금리가 오를 일밖에 안 남았다는데 그렇다면 고정금리를 찾아야 합니다. 저와 같이 무주택자들을 위한 금융 상품이 있습니다. 한국주택금융공사(HF)가 운영하는 보금자리 대출이죠.

보금자리 대출은 무주택 실수요자들에게 낮은 고정금리로 집값의 최대 70%까지 돈을 빌려주는 상품입니다. 처음으로 내 집 마련에 도전하는 사회 초년생인 저에게 딱이었죠.

다만 그 자격은 까다롭습니다. 우선 당연히 무주택자여야 합니다. 연 소득은 7,000만 원 이하여야 하고요. 매매가격이 6억 원이 넘어서도 안 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다행히 연봉이 그다지 높지 않은 저는 자격 요건을 갖췄습니다.

이제 보금자리 대출의 조건을 지키면서 구입할 수 있는 아파트를 찾아야 합니다. 시세 5억 원과 매매가격 6억 원 이하라는 조건을 동시에 갖춘 아파트는 서울에서 좀처럼 찾을 수 없습니다. 관악구, 구로구, 금천구, 은평구 등을 샅샅이 찾았습니다. 주변 생활 인프라와 출퇴근 동선 등을 생각한 결과 노원구가 낙점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부동산 기자로서 지식을 끌어모아 향후 개발 가능성이 있는 아파트를 찾았습니다. 재건축이 될 때를 대비해 용적률과 주변 환경도 따졌습니다. 부동산시장의 진리로 통하는 ‘역세권’과 ‘학군’을 만족하는 단지를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만족할 순 없습니다. 이렇게 따진 미래 가치가 몇 년 뒤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도 지켜봐야 하겠죠.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생했습니다. 가격과 여러 가지 조건이 맞는 아파트를 찾았지만 지난해 여름은 일명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과 ‘금관구(금천·관악·구로구)’의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던 시기였습니다. 제가 점찍은 아파트도 시세가 일주일에 1,000만 원씩 오르고 있었죠.

대출을 알아봐 준 은행 대출 상담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이대로라면 계약할 때쯤 시세가 5억 원이 넘어버릴 것 같다고. 그러면 보금자리 대출 승인을 못 받을 수 있으니 계약 시기를 조정하자고.

부랴부랴 저는 매도인에게 이사 일정을 조정해 줄 수 있냐며 사정해 계약 시기를 앞당겼습니다. 다행히 매도인은 흔쾌히 승낙해줬고 급하게 움직인 저는 일주일 만에 아파트를 사기로 결심하고 도장을 찍었습니다. 저 때문에 매도인은 이사도 서두르게 됐죠.

놀랍게도 대출 상담사의 말대로 제가 매입한 아파트는 계약 후 1000만 원이 더 올라 시세가 5억 원이 넘어버렸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은행 관계자들과 매도인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아니면 제 소중한 계약금을 날릴 뻔했으니까요.

그 사이에 금리도 많이 올랐습니다. 제가 대출을 받았을 당시 2%대에서 지금은 3%대로 껑충 뛰어버렸습니다. 지금도 안도의 한숨이 나오네요.

이렇게 지금까지 세 번의 대출금을 갚은 저는 아직 현관문 하나도 우리 집이 아닌 집에서 출·퇴근을 하고 있습니다. 매달 대출금 때문에 통장을 스쳐 지나가는 월급을 보면 막막하지만, 커튼을 달기 위해 ‘내 집에’ 못을 박을 때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7년도 안 돼 덜컥 집을 사버렸다는 저에게 인생 선배들은 이런 말들을 했습니다.

“요즘 애들은 대단하다”, “우리 때는 전세부터 차근차근 시작해 겨우 아파트 한 채 마련했는데”, “겁이 없다” 등등.

심지어 제가 매입한 아파트를 소개해 준 공인중개사 아저씨도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보기엔 지금 집값이 미쳤어. 이 가격에 사는 건 위험한 것 같아. 진짜 지금 사도 괜찮겠어?”



정부는 더한 눈치를 줍니다. “주택 시장의 하향세가 예상했던 것보다 클 수 있다”...

언론도 이를 거듭니다. “영끌족 비명 시작됐다”, “영끌족 어쩌나”, “영끌족 ‘발 동동’”...

물론 빚을 갚을 능력도 없으면서 부동산을 로또처럼 생각하고 자산 부풀리기에 뛰어든 영끌족에 대한 우려는 큽니다. 작년에 서울에서 매매 거래된 아파트 10채 중 4채는 20~30대가 샀다고 하니 금리 인상이 예고된 지금, 이들의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입니다.

아파트값도 영끌족이 산 아파트값이 더 떨어집니다. 부동산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들면 매달 1억~2억 원 단위로 가격이 올랐던 강남의 고가 아파트값이 하락해야 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절대적인 가격이 아닌 비율로 볼 때 집값이 더 떨어지는 건 9억 원이 넘지 않는 중저가 아파트입니다. 다주택자 입장에서 집을 팔아야 한다면 강남에 있는 고가 아파트보다는 서울 외곽에 있는 중저가 아파트를 먼저 처분하는 선택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시장이 불안해질수록 인기가 많아지는 ‘똘똘한 한 채’죠.

하지만 영끌족을 위한 변명도 하고 싶습니다. 영끌족이 된 사람 중 일부분은 단순히 일하지 않고 돈을 벌고 싶다는 욕심이 아니라 이러다간 평생 월세방에 살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일 수 있습니다.

제가 영끌족이 된 이유는 내가 받는 월급에서 매달 집주인에게 월세 비용을 내면서 사느니 아무리 비싸더라도 내 집에 대한 대출금을 갚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은행에 낸 대출금은 결국 내 집이 될 거니까요.

그리고 동시에 더 이상 전·월세로 살다가 내 집을 마련하는 시대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매년 쥐꼬리만큼 오르는 월급에서 주거비를 지출하면서 저축까지 하면서 매년 두 세배씩 값이 오르는 집을 사기는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죠.

현재 집값이 하락기를 걷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집값은 떨어지는데 금리는 계속 오르니 능력에 맞지 않게 무리하게 돈을 빌린 영끌족에게 위기가 찾아온 것은 당연합니다.

일각에선 이들을 위해 저금리로 갈아탈 수 있게 지원을 해줘야 하지 않겠냐는 ‘구제론’이 나오기도 합니다.

저는 감히 구제론을 이야기할 순 없습니다. 그러나 영끌족이 등장한 건 과연 오로지 개인의 책임일까요? 분명한 건 주택 공급 확대를 주장한 시장의 의견을 귀담아듣지 않고 20번이 넘는 부동산 정책으로 집값 불안을 불러일으킨 주인공 중 하나로 꼽히는 정부의 관료들이 “그러게 내가 뭐라고 그랬니”라는 형태로 영끌족을 비난하는 모습은 좋지 않아 보인다는 점입니다.

이 정도면 월급의 대부분을 대출금으로 내며 살고 있는 영끌족을 위한 변명이 됐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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