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 선 규 97년 한일 양국의 교류증진 및 정보교환을 목적으로 체결한 일본부동산감정협회와의 협정에 의거 지난 4월 20일 제2차 한일감정평가협력회의가 일본 동경에서 개최되었다. 이에 본고는 금번 회의 한국측 기조연설문을 게재한다. 국토이용관리법이 제정되면서 1973년 봄 토지평가사를 뽑는 첫 시험에 합격한 것이 인연이 되었다. 그 후 그 자격증으로 개업을 한 것도 아닌데 운명처럼 내 생애에 동반해 왔다. 지난 '80년대 후반 무역수지흑자와 중동 붐에 편승한 해외건설 호조, 88올림픽 등 해외부문의 통화팽창여파로 많은 돈이 부동산시장에 흘러들어 우리사회는 부동산 투기와 지가상승의 악순환으로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시켰다. 정부에서는 여러 가지 제도를 내놓았지만 지가상승으로 인한 개발이익이 토지소유자의 몫으로 되는 상황하에서는 백약이 무효였다. 급기야는 토지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위하여 토지공개념을 강화하는 여러 가지 강력한 법률들이 제정되었고 한편 공시지가체계를 확립하고 전국 2천5백만 필지의 지가를 매년 조사하기 위하여 건설부에 지가조사국이 설치되었다. 새 기구가 설치되었지만 당시 전국의 지가를 일제히 조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도 그 자리를 희망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감정평가사 자격을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본의 아니게 나는 초대 국장이 되었다. 지금은 개별공시지가조사작업이 제도화되어 큰 어려움 없이 추진되고 있지만 개별지가조사체계를 처음 확립하기까지는 노심초사 속에 많은 시행착오와 말 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다. 자격증을 갖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후회되었던가. 감정평가사자격증 때문에 겪은 첫 번째 홍역이었다. 1995년 봄 한국감정원이 경영문제와 내부갈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정부 내 1급 공무원 중에서 자격증을 갖고 있는 유일한 전문가이므로 당시 그 기관의 어수선한 분위기 수습에 가장 적격자라는 이유로 나는 본의에 반해서 30 여년 몸담았던 공직을 떠나는 신세가 되었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감정원장이 되었다. 그 곳에서의 3년은 경영구조 개선과 노사문제로 어려움도 많았지만 고생한 보람으로 국민의 정부 출범 때는 정부의 중책을 맡는 영광도 있었고 반면 생각지도 못했던 구설수에 휘말려 말 할 수 없는 수모와 고통을 당하는 등 영욕이 얼룩졌다. 이 것이 자격증과의 두 번째 인연이었다. 이토록 거역할 수 없는 큰 힘으로 내 인생의 좌표를 돌려놓을 수 있는 이 자격증이 도대체 나에게 무엇인가. 악귀를 몰아내 주는 행운의 부적인가 아니면 재수 없는 요물의 징표일 뿐인가. 지난 연말에 감정평가이론을 체계화하고 업계발전에도 기여하자고 뜻을 모아 설립한 한국감정평가학회의 초대 회장직을 맡게 된 것도 그 자격증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또한, 감정평가업계가 추진하고 있는 연구원의 위상 제고와 연구기능의 활성화 작업에 동참하게 된 것도 결국 자격증으로 인한 인연이리라. 돌이켜 보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응시했던 그 시험이 좋든 싫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30여 년간 나의 사회 활동의 동반자로서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음을 새삼 생각하게 한다. 감정평가사와의 끈질긴 인연, 그것은 결국 숙명처럼 내 인생의 진로를 지배해 왔다. 이제 감정평가업계와 다시 맺은 인연으로 업계의 속사정을 좀더 가까이 자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도 생각하게 한다. 연구원은 Think Tank로서 업계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주변 여건변화에 순응해서 계속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임무일 것이다. 지난 3월 중순 협회주관으로 실시했던 '감정평가에관한규칙' 개정을 위한 공청회의 토론 결과를 듣고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꼈다. 밖에서는 우리 업계에 개혁과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데 우리는 개선을 거부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처럼 쉬운 방법으로 계속 현실안주 하자는 입장을 고수하였다고 한다. 업계 대부분의 의견이 그런 것이라면 우리에게 변화의 희망은 없는 것인가. 이런 것을 '조개껍질 속의 안일'이라고 하던가. 지금 조개껍질 밖의 세상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우리가 스스로 우물안 개구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눈을 들어 우리 주변을 다시 한번 살펴 볼 때이다. 감정평가사가 지금 우리사회에서 얼마나 큰 신뢰와 존경을 받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에게 아킬레스건은 없는지 살펴야 한다. 털 끝 만큼의 자기 희생도 감수하지 않으면서 무엇을 더 얻을 수 있을까. 감정평가사가 신뢰를 바탕으로 존경받는 전문직으로 남아 있으려면 시대의 요구를 알고 스스로 그에 맞게 변해 주어야 하고 내실을 갖추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이 시대는 우리가 변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회원들이 듣기 싫어하는 쓴소리를 하는 것도 연구원의 기능에 포함되는 것일까.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