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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부동산
부동산을 보는 눈 ②


“견본주택가지 말고접속하세요”
메타버스에둥지 튼분양 시장

코로나19에 따른 비대면의 일상화로 아파트 분양 시장의 풍경이 급변하고 있다.
인파로 가득 찼던 견본주택(모델하우스)이 상전벽해다. 거대한 임시 건물에서 온라인 가상공간 속으로 터를 옮겼다.
이른바 ‘메타버스(Metaverse)’라고 불리는 가상세계다. 수만 명의 관람객이 견본주택에 입장하려고 서로 밀치고 줄을 서는 모습은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메타버스는 가상·초월을 뜻하는 ‘메타(Meta)’와 세계·우주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다.
현실 세계의 모습을 3차원 온라인 공간에 그대로 구현한 일종의 ‘가상현실(VR)’이다.
건설사들은 코로나19 방역 문제로 견본주택을 짓고 고객을 끌어모으는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이 메타버스 공간에 견본주택을 차리기 시작했다.
아파트 분양을 희망하는 수요자들이 이제 ‘발품’ 대신 ‘손품’을 팔아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글. 양영경 기자(헤럴드경제 건설부동산부)

언제든지 원하는 ‘집 구경’

메타버스 견본주택의 최대 장점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집 구경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고객들은 마우스 클릭, 또는 스마트폰 터치만으로 아파트 ‘기본형’과 ‘옵션형’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다. 실물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보다 정확성은 떨어지겠지만, 일일이 걸어서 이곳저곳 옮겨 다니지 않아도 돼 시간을 많이 아낄 수 있다는 점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아파트 주변 입지를 살피는 것도 금방이다. 그동안 실물 견본주택은 다양한 주택형을 선보이는 데 한계가 있었다. 아파트를 지을 때 공급되는 주택형은 적게는 3~4개 많게는 10개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견본주택에서는 가구 수가 많은 2~3개 주택형만 전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확장형을 비롯한 ‘옵션형’의 구조는 별도 안내하는 데 그쳐 실물은 고객이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견본주택을 찍은 사진을 기반으로 한 사이버 견본주택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다양한 주택을 보여주는 데는 제약이 컸다. 메타버스 견본주택에서는 실제 볼 수 없는 주택형이나 구조를 모두 볼 수 있다. 설명에 의존했던 옵션형 구조가 어떤 형태인지도 확인할 수 있다.

메타버스 시장에 뛰어든 건설업계

이런 이유로 건설업계에서는 메타버스 견본주택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롯데건설은 지난 7월 프롭테크 기업 직방이 만든 메타버스 공간 ‘메타폴리스’에 사옥을 지었다. 고객은 자신의 아바타를 통해 가상공간에서 견본주택을 관람하고 분양 상담을 할 수 있다. 포스코건설은 메타버스 기업 ‘올림플래닛’과 손잡고 지난 4월 인천 연수구 송도동 일대에 들어서는 ‘더샵 송도 아크베이’ 홍보에 메타버스를 활용했다. 고객들은 단지 소개, 입지 투어, 내부 관람, 상담 예약 등을 가상공간에서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GS건설은 지난 5월 경기 고양시 ‘DMC리버시티자이’를 분양하는 과정에서 가상현실 견본주택을 운영했다. 실물 견본주택 없이 ‘비대면 분양’에 돌입한 것이다. 주택형별 영상은 100% 컴퓨터 그래픽(CG)으로 제작했다. 덕분에 단순히 사진을 찍어 모은 사이버 견본주택이 구현하지 못하는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본 모습과 사각지대 영상까지 제공할 수 있었다. 실물 견본주택보다 정보가 부족할 수 있다는 우려는 원격 상담 서비스를 도입해 해소했다. 관할 지방자치단체도 온라인 견본주택을 근거로 분양을 승인하며 코로나19가 낳은 변화의 흐름에 발을 맞추고 있다. 지난해 경기 고양시가, 올해 경남 거제와 광주 북구 등이 실물 견본주택 없이 입주자 모집 공고를 승인했다. 이런 점에서 건설업계는 메타버스 견본주택을 통한 분양이 새로운 표준이 될 것이란 평가를 내놓고 있다. 메타버스 견본주택의 편리함을 한 번 맛본 이상 코로나19가 종식돼도 과거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메타버스 견본주택을 미래 생존전략으로 삼는 건설사도 늘고 있다. 최근 소비 주체로 떠오른 MZ세대의 호응도가 높고, 좋은 비용 절감 방안이 되기 때문이다. 일부 건설사는 분양 희망자들에게 다양한 주거 콘텐츠를 제공하는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 메타버스를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주택의 질감을 가상공간에 정밀하게 구현하고, 가상 세계에 생소한 중장년층 고객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친숙하고 쉽게 다가가는 것이 최대 관건으로 꼽힌다.

건설현장 안전관리 효율화에도 적용

메타버스를 비롯한 가상현실 기술이 건설현장의 안전을 도모하는 데도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건설사들은 메타버스 핵심 기술인 VR, 인공지능(AI), 빌딩정보모델링(BIM) 등을 활용해 시공과 설계, 건설현장 안전관리 효율화에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삼성물산은 VR을 적용한 장비 안전 가상훈련 프로그램 ‘스마티’를 도입했다. 건설현장에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사고 시나리오를 설계하고 실제 사고가 발생한 작업 상황을 직접 체험해 보는 프로그램이다. 가상훈련을 통해 실제 작업을 할 때 더욱 주의하도록 해 사고를 예방하겠다는 것이다. GS건설은 온라인 플랫폼 기업 벤타브이알과 함께 메타버스를 활용한 안전교육 콘텐츠 개발에 나섰다. 건설 재해를 예방하고 안전보건교육을 강화하기 위한 VR 안전교육 프로그램이다. 양사는 건설현장의 위험 작업에 대한 특별교육, 필수안전수칙, 사고 유형별 영상 등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할 예정이다. GS건설 관계자는 “안전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DL이앤씨는 BIM 기술을 접목한 안전관리 계획을 수립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DL이앤씨는 기계, 전기, 배관 설비의 설계 물량과 시공 후의 모습을 3차원 영상으로 구현하고 빅데이터로 산출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공사 간 서로 간섭하거나 충돌하는 부분을 미리 파악해 위험요소를 제거한다는 계획이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근로자가 가상공간 속 건설현장에서 작업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사전에 위험요소를 도출·차단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라며 “다만, 메타버스 구축에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는 만큼 점진적인 확산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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