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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중개보수’, 얼마가 적당할까요?

글. 문제원 기자(아시아경제 건설부동산부)

3년 전 검찰 출입 기자 시절 공인중개사 시험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2년 가까이 부동산부 기자로 일하다 보니 조금 나아졌지만, 당시 저는 기초적인 부동산 상식도 잘 모르는 일명 ‘부린이(부동산+어린이)’였습니다. 결혼 적령기에 가까워지면서 ‘내 집 마련’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자연스레 부동산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목표가 있으면 의욕이 생기기 마련이니 이왕이면 중개사 자격증을 따보기로 했습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생활이 쉽지 않았습니다. 요즘과 달리 코로나19가 없던 당시에는 일주일에 몇 번씩 저녁 자리가 이어지다 보니 주말에 공부를 몰아서 하기 일쑤였습니다. 민법, 공인중개사법, 공법 등 공부 내용도 익숙지 않았습니다. 특히 재건축·재개발과 같은 정비사업 절차를 암기할 때는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습니다. 혹자는 ‘공인중개사 시험 정도는 쉽다’고 말씀하실 수도 있지만 생각만큼 수월하진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이듬해인 2019년 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제가 개인적인 ‘자격증 취득기’에 대한 이야기를 구구절절 풀어놓는 것은 요즘 중개사들이 받는 중개보수가 핫이슈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국토교통부는 수 개월간의 연구와 회의를 거쳐 매매 6억 원 이상과 임대차 3억 원 이상 주택에 대한 중개보수 상한요율을 인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를 비롯한 일선 중개사들은 이 같은 결정에 “생계가 위협받는다”라며 크게 반발 중입니다.

“왜 이렇게 비싸” 10억 주택 매매 시 중개보수 1800만 원

중개사를 통해 부동산 매매·임대차를 한 번이라도 해보신 분은 중개보수를 내보셨을 겁니다. 거래금액에 따라 중개보수가 다른 만큼 모두에게 부담이 크다고 말할 순 없지만 평균 아파트값이 11억 원에 달하는 서울에선 중개보수 부담이 만만치 않은 게 사실입니다. 10억 원짜리 주택 하나를 중개하면 중개사가 매도자와 매수자에게서 받을 수 있는 최대 중개보수가 무려 1800만 원에 달합니다. “1년에 2~3건만 거래해도 먹고 산다”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그럼 중개보수는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요. 국토부는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중개보수 개편안을 내놨지만 소비자와 중개업계 모두 여전히 불만입니다. 많은 소비자들은 개선안도 부담이 크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고, 중개사들은 연일 인하 반대를 외치고 있습니다.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지인은 “집 몇 군데 보여주고 수백만 원씩 받아가는 중개보수 체계를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한 반면, 한 중개사는 “변호사는 한 건에 수천만 원을 받아도 문제 삼지 않으면서 중개사들에게만 화살을 돌린다”라며 불만을 표출했습니다.

사실 중개보수 요율에 정답이 있을 순 없습니다. 다만 이 같은 소비자와 중개사들의 반응에 힌트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집값이 빠르게 오르면서 절대적인 금액이 커지긴 했지만 상당수 소비자들은 ‘받은 서비스에 비해 중개보수가 과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수가 비싸더라도 그에 맞는 충분한 서비스를 받았다고 생각되면 지출한 돈이 아깝지 않을 텐데, 그렇지 않으니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소비자 만족 측면에서 보면 기존 중개보수가 과하다는 말이 더 와닿습니다. 국토부가 2018년 1월부터 올해 4월까지 부동산 중개업에 대한 빅데이터를 조사한 결과 중개사와 연관된 단어로 집값 담합, 떴다방, 무자격, 무등록 등 부정적인 키워드가 다수를 차지했습니다. 부동산 전체 거래자 중 46.4%는 중개사의 전문성이 낮은 수준이라고 평가했고, 35.8%는 중개사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중개사가 능력이 없다고 생각해 믿지 않으니 중개보수로 얼마를 내든 사람들이 ‘아깝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올해 8월 국토부가 주최한 중개보수 개편안 토론회에 참석한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집값이 오르면서 중개보수는 급등하는데 중개서비스의 차이는 느낄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집값 상승과 중개업무는 관계가 없으니, 이 말에 반박하기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누적된 서비스 불만족이 중개보수 인하 요구로

중개사들의 업무에 만족하지 못했다는 사람은 주변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전셋집을 구하던 한 지인은 “‘강아지와 살 수 있다’는 중개사의 말을 듣고 가계약금을 송금했는데 추후 집주인으로부터 강아지와 살 수 없고, 가계약금도 돌려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아 한동안 마음고생을 한 적이 있다”라고 토로했습니다. 다른 지인은 신혼 전셋집에 입주한 이후 방 벽지에서 담배 냄새가 올라와 고통을 겪었는데 중개사는 “방법이 없다”라는 말로 일관해 실망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부동산 거래 상식이 부족하던 시절 세입자인 저에게 불리하게 작성된 약정을 제대로 고지 받지 못해 약간의 재산상 피해를 본 적이 있습니다. 주택임대차법에 따르면 세입자에게 불리하게 작성된 약정은 효력이 없지만, 전·월세 거래가 많은 지역의 경우 집주인과의 관계가 중요한 중개사가 이를 세입자에게 제대로 고지해 주지 않거나 집주인에게 유리한 측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성실하고 정직하게 업무를 하는 중개사도 있습니다. 자격증만 가진 저는 넘볼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넓은 부동산 상식을 가지고 거래를 돕는 중개사를 여럿 봤습니다. 중개보수 인하에 반대하며 청와대 청원을 올린 한 중개사는 “(저는) 골목길을 쓸며 하루를 시작하고, 길을 물어보는 수없이 많은 분들의 안내자 역할을 하고 있다”라며 “동네 어르신들이 등기부등본이나 건축물대장을 떼어 달라고 하면 군소리 안 하고 떼어주고, 주말에도 불려 나와 많은 갈등을 조정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일선에서 땀방울을 흘리는 중개사들을 생각하면 중개보수를 무작정 낮추는 게 정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중개서비스도 일종의 상품이니 시장 논리에 맡기면 되지 않느냐는 말도 나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쉽지는 않습니다. 지난해부터 공인중개사법 개정으로 중개사들이 카르텔을 구성해 중개보수를 담합하는 행위가 금지되긴 했으나 여전히 암암리에 관행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곳이 많기 때문입니다. 취재차 만난 서울 학군 단지의 한 중개사는 “수천만 원의 권리금을 내고 카르텔에 들어가야 정상 영업이 가능하다”라며 “중개보수를 낮추는 등 이들의 정책에 따르지 않으면 왕따를 당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중개보수 안 아깝네”라는 말 나오게 혁신해야

중개보수 인하안이 확정됐지만 시장 개편은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중개사가 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반값 중개’를 내세우며 영업을 확장하는 법인이 늘고 있고, 직방 등 프롭테크(부동산과 기술의 합성어) 기업의 직접 중개시장 진출도 가시화됐습니다. 기존 중개사들의 설자리가 앞으로 더욱 줄어들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장기적으로 일반 중개사들이 합당한 중개보수를 받으며 살아남기 위해선 소비자들 사이에서 ‘중개보수가 아깝지 않다’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평균 중개서비스의 질을 올려야 합니다. 중개서비스가 좋아지면 부동산 거래가 보다 활성화될 수 있고, 중개사들은 그만큼 수익을 얻을 기회를 더 많이 확보할 수 있습니다.

실제 부동산 커뮤니티에선 ‘중개보수를 아까워하지 말라’고 조언하는 재테크 고수들도 많습니다. 한 투자자는 “복비를 깎는 게 무조건 능사는 아니다”라며 “관계를 잘 형성한 중개사는 나중에 좋은 매물이 나오면 신경을 써서 연락 주기도 하는데 이런 관계에서 얻는 혜택이 상당히 크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투자자도 “비용을 부담한 만큼 혜택을 뽑아내면 된다”라며 “때론 작은 나무를 보지 말고 넓은 숲을 볼 줄 아는 지혜도 필요하다”라고 했습니다. 중개사가 더 나은 중개서비스를 제공하면 웃돈을 내더라도 아까워하지 않을 소비자가 많습니다. ‘영끌’까지 할 정도로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이 부동산 거래인데, 안전하고 믿을만한 중개사라면 지갑이 보다 쉽게 열리지 않을까요.

중개서비스 좋아지면 수익창출 기회도 확대

중개보수 이슈에 묻혀 많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번 정부 개편안에는 중개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대책도 포함됐습니다. 소비자 불만을 줄이기 위해 공인중개사협회에 민원 창구를 마련하기로 했고, 중개사고 대응 절차나 법, 제도와 관련된 상담서비스도 도입할 예정입니다. 중개거래 시 발생할 수 있는 갈등조정을 위해 ‘분쟁조정위원회’ 도입 역시 추진됩니다.

무엇보다 중개사의 전문성 강화를 위해 위탁교육과 성과평가 시스템을 마련하기로 한 것은 긍정적입니다. 현재 중개사는 사무소 개설 전 실무교육 28시간, 이후 2년마다 연수교육 12시간을 받는데, 감정평가사나 법무사 등에 비해 턱없이 부실합니다. 미국 등 일부 선진국에서는 중개사 자격 취득 이후에도 실무 분야 전문성 확보를 위해 전문자격 인증제도를 운영하며 자격을 정기적으로 갱신해야 하지만 국내에는 이 같은 규정도 없습니다.

이에 정부는 연수교육을 보다 전문화해 역량을 강화하고 토지, 상가 등 분야별 전문 교육도 실시해 전문분야 인증제를 만드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습니다. 새로 개업하거나 장기간 중개업에 종사하지 않은 중개사를 대상으로는 사무소 개설 전 실무교육을 강화합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긍정적인 것은 최근 중개업계 내부에서도 일부 자정 작용이 나오고 있다는 점입니다. 중개사들이 많이 가입한 사회관계망서비스 등에서는 “남 탓만 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 뼈를 깎는 혁신을 해 정당한 권리를 쟁취해야 한다”라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코로나19와 집값 폭등으로 공인중개사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의 부담도 많이 커진 요즘입니다. 중개보수 갈등을 넘어 신뢰할 수 있는 중개사가 많아지고, 안전한 거래 환경이 하루빨리 안착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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