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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링에서 찾은 ‘이너피스’

글. 전형민 기자(뉴스1 건설부동산부)

혹시 취미가 있으신가요? 독서·운동·등산·영화감상 같은 학창 시절 한 번쯤 고민 없이 적어봤던 것 말고, 일상생활에서 따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즐기는 취미 말입니다.

필자의 취미는 ‘디테일링(Detailing)’입니다. 큰 범주에서 ‘셀프세차’를 일컫는 말인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셀프세차와는 좀 다릅니다. 영어 단어의 뜻을 살펴보면 ‘세부사항, 세부장식, 세세한’ 정도로 해석되는데요. 쉽게 보면 꼼꼼히 무언가를 살피는 것을 연상시키고, 그래서 처음 접하는 분들은 기계식 세차보다는 좀 더 깔끔하게 직접 하는 세차 정도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디테일링은 섬세한 세차보다는 안전한 세차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우리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의 표면이 그냥 단단한 철판으로 만들어진 것 같아도 방음, 방청, 변색 억제, 미관 등 다양한 목적을 위해 꽤 복잡하고 심오한 방법으로 4~5중 화학처리가 돼 있거든요. 디테일링은 전문적인 화학 약품과 도구를 사용해 이런 층(Layer)들에 최대한 손상을 주지 않고 세척·관리하는 작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차는 물론이고, 복원·보호를 위한 간단한 시공, 광택 작업(왁싱) 등도 포함하는 작업입니다.

너무 전문가의 영역이 아니냐고요? 물론 독한 화학 약품을 다루기도 해서 마스크나 니트릴 장갑의 착용을 권장합니다만, 최근에는 자연 성분으로만 구성된 약품도 많이 출시되고, 엄격한 환경규제 덕분에 인체에 해가 될 정도의 제품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디테일링에 빠진 환자(디테일러들은 자신을 ‘세차 환자’라고 합니다. 일종의 자학개그인데요, 그만큼 중독성이 심하다는 말입니다)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내 차의 컨디션을 스스로 관리하고 유지하면서 느끼는 자기만족과 성취감이 꽤 크다고 입을 모읍니다.

디테일링은 영국과 미국, 일본 등에서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대중적인 취미로 자리 잡은 하나의 산업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과 함께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죠. 단체 활동이나 모임이 줄어들면서, ‘저녁이 있는 삶’이 생겼고, 잉여시간을 혼자 조용히 즐기는 취미가 주목받으면서 수요가 많이 늘어난 겁니다. 국내 유명 포털 사이트에 개설된 한 디테일링 카페 가입 구성원은 무려 25만 명을 넘길 정도입니다.

디테일링은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디테일러들은 1800년대 마차의 페인트칠을 오래 보호하기 위해 동물성 지방 성분의 보호제를 코팅한 것을 꼽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나무로 만든 가구 등에 옻칠했던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1900년대 초반, 자동차 산업의 부흥과 마이카 시대가 열린 1980년대를 전후로 디테일링은 대중적인 취미생활 중 하나로 자리 잡습니다. 자동차의 발전과 역사를 함께해온 셈이죠.

현대에 와서는 자동차가 단순한 운송수단을 넘어, 개인의 개성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발전하면서 디테일링이 대중문화로 유행했습니다. 그저 단순하게 차량에 들러붙은 더러운 오염물을 씻어내는 작업에서, 보이는 모습을 가꾸는 한편 차와 나의 가치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진화한 겁니다. 개인의 시간과 비용을 소비하더라도 ‘내 것’을 더 완벽하게 관리하고 싶은 욕구가 단순한 세척(Cleaning) 과정을 관리(Managing)의 개념으로 변화시키면서 하나의 문화로 승화시킨 것입니다.

최근 환경에서는 디테일링의 중요성이 더 부각됩니다. 우리나라에서 보편화한 산성비는 차량의 도장 면을 파고들어 방치할 경우 부식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원인입니다. 대부분 자동차 도로의 주재료인 아스팔트의 타르 성분 역시 마찬가집니다. 바퀴와의 마찰로 튀어 오른 타르들은 차량의 도장 면에 고착돼 점점 파고 들어갑니다. 차의 하단부에 작은 점이 생긴 게 눈에 띈다면 타르의 고착을 의심해봐야 합니다.

브레이크의 마찰로 생기는 분진(철분)도 도장 면에 박혀 녹아내립니다. 이들은 단순히 미관을 해칠 뿐만 아니라 쇠로 만들어진 차량의 도장 면을 부식시키기 때문에 안전에도 좋지 않습니다. 주행 중 부딪쳐 눌어붙는 곤충의 사체도 대체로 산성인 만큼 도장 면을 부식시키는 주요 요인 중 한 가지로 꼽힙니다.

디테일링은 이런 것들을 꼼꼼히 제거하고, 다시 그런 상황이 되더라도 쉽게 오염되거나 충격을 받지 않도록 왁스 등 보호제를 발라 관리하는 작업의 전반입니다.

이렇다 보니 디테일링은 예비 세차부터 본 세차, 드라잉, LSP(Last Step Product·왁싱 등 디테일링의 마지막 단계)까지 기본 공정만 거쳐도 보통 짧으면 2시간, 길면 3~4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익숙지 않은 초보에겐 중노동에 가깝죠. 여기에 반기별로 한 번씩 안전운행을 위해 추가하는 차창 유막 제거와 발수 코팅, 엔진룸 청소 등 세부·부가적인 관리까지 더한다면, 소중한 주말 중 하루를 전부 쓰기도 합니다.

듣기에 따라선 괴로워 보이기까지 한 중노동인데, 왜 사람들은 의무도 아닌 일에 시간과 열정을 쏟으면서 ‘즐긴다’고, ‘취미’라고 표현할까요? 아니, 굳이 사서 고생하는 짓을 왜 하는 걸까요? 시쳇말로 ‘광빨’ 때문일까요? 물론 3~4시간의 디테일링을 끝내고, 보닛에 비친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알 수 없는 카타르시스가 솟구칩니다. 운전할 때 쾌적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도 맞는 말입니다.

또 어떤 디테일러들은 남의 손에 애마를 맡길 수 없다고 합니다. 이들에게는 소유 차량에 대한 애착이 디테일링의 이유겠습니다. 다른 디테일러들은 운동에서 의미를 찾기도 합니다. 자동차 외관부터 실내 구석구석까지 닦고 왁스 칠을 하는 일이다 보니 꽤 몸을 많이 써야 하거든요. 디테일링 카페 게시판을 찾아보면 초보들이 첫 디테일링을 마치고 다음 날 몸살이 났다는 글을 종종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이게 왜 취미야? 비싼 밥 먹고 할 짓이 그렇게 없나?’라고 생각하는 독자분들도 계실 겁니다. 필자도 그 마음을 이해합니다. 저 스스로도 ‘세차는 기름 넣고 3,000원 내고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던 때가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 손 세차 맡기는 비용 아끼겠다고 시작한 디테일링에서 흥미를 느끼고, 정신을 차려보니 그 매력에 푹 빠져들었습니다.

디테일링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우선 도구가 다양합니다. 예비 세차에 들어가는 프리워시 약제와 본 세차에 들어가는 카 샴푸만 하더라도 국내 시판 제품만 수백 개가 넘고, 왁스는 액체형, 고체형, 겔형 등을 다 더하면 족히 수천 개는 됩니다. 이들 중 내 차의 컨디션(색깔, 도장 면 상태, 노후도, 관리환경 등)에 맞는 제품을 찾아서 사용하는 재미가 쏠쏠한 데다, 가성비부터 계절별 조합까지 다양한 제품 간 여러 조건의 ‘궁합’까지 탐구한다면 질릴 틈이 없습니다.

특히 필자는 디테일링 작업 속에서 묘한 만족감과 정신적인 쉼을 얻었습니다. 디테일링은 꽤 섬세한 작업이지만, 제대로 된 습관으로 어느 정도 숙달하면 단순노동이기 때문입니다. 노력한 만큼 결과물이 즉시 도출된다는 면에서 만족감과 성취감을, 단순노동의 과정에서 머릿속 근심이나 걱정을 덜어내고 정신을 온전히 평온한 휴식 상태로 만드는 효과도 있습니다. 이는 ‘환자’들이 차가 더럽지 않더라도 주기적으로 세차장을 찾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독자들은 이미 눈치챘겠지만, 필자가 디테일링에 대해 이토록 구구절절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취미의 필요성을 환기하고 강권하기 위함입니다. 취미는 단순히 ‘흥미가 있는 재밌는 일’을 넘어 삶이라는 긴 여정 속 오아시스가 되기 때문입니다. 별것 아닐 것 같은 취미가 회사와 집을 쳇바퀴 돌듯 오가는 우리의 삶에 새로운 자극을 주고 취미 생활을 통해 만족감과 업무에 대한 새로운 활력을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게다가 디테일링은 적은 비용으로 내 물건을 아끼고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해주는 데다 그다지 엄청난 기술을 요구하지도 않으니까요.

본격적으로 맑고 화창한 하늘이 이어지는 시기입니다. 주말을 활용해 훌쩍 바람을 쐬러 가기에도 좋고, 휴가를 계획하고 먼 길을 떠나는 등 자동차의 이용이 급증하는 계절이 다가왔습니다. 떠나기 전후 새로운 취미로 단순노동이지만 만족감과 운동, 세차라는 일석삼조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디테일링에 도전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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