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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며 일을 한다는 것

글. 문선영 기자(이투데이 부동산부 차장)

저는 두 아이를 키우며 일하는 엄마, 워킹맘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이지만 일을 하며 아이들을 키운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학교도 유치원도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돌보면서 보낸 지난 몇 달은 악몽과도 같더군요. 새삼 공교육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육아 암흑기는 물론 지난 10여 년간 임신과 출산을 하면서도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저 혼자만의 힘이 아니었습니다. 남편의 도움도 컸지만 친정어머니의 도움이 없었다면 결코 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어머니의 ‘도움’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상 어머니의 ‘희생’이죠. 아직 우리 사회에서 한 여성이 사회생활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여성의 희생을 담보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인가 봅니다.

통계청이 지난 6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맞벌이 가구는 566만 2,000가구로 집계됐습니다. 맞벌이 가구 비중은 46%에 달한다고 합니다. 566만 가구의 사정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저처럼 친정어머니가 아이를 봐주는 경우는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케이스입니다.

실제 친정어머니가 아이를 봐주시는 덕분에 저는 다른 동료들보다 더 자유롭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직업의 특성상 잦은 저녁식사 자리는 물론, 갑작스러운 약속에도 “엄마, 애들 좀 봐줘.”라는 전화 한 통이면 해결되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어머니에게 타박을 조금 듣기는 하겠지만요.

하지만 아이를 돌봐주시는 시터를 고용한 직장 동료의 경우 남편이 일찍 퇴근할 수 없을 때는 시터와의 사전 조율이 필요해 번개 약속은 꿈도 꾸지 못합니다. 불가피한 상황으로 저녁 약속을 잡은 경우에는 별도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도 부담이라고 합니다.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것도 문제지만 회사에서의 생활도 녹록지 않습니다. 처음 아이를 가졌을 때만 해도 상사(지금은 퇴사한)로부터 “왜 벌써 임신했어.”라는 말까지 들어야 했으니까요.

그나마 첫아이를 낳고, 둘째 아이를 낳는 동안 회사의 출산과 육아휴직에 대한 인식 변화가 피부로 느껴질 정도로 달라졌다는 점은 다행입니다. 이제는 응원도 많이 받습니다. 워킹맘이 행복해야 가정이 행복하고, 대한민국이 행복하다는 응원까지 받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가끔 이런 응원도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나의 행복에 가정과 대한민국의 행복까지 달렸다는 과잉 자의식도 부담스럽지만, 무엇보다 이런 말들이 육아가 여성의 책임임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불편합니다.

사실 워킹맘이라는 단어부터가 이상합니다. 밖에 나가서 돈(임금)을 받고 일하는 엄마만 ‘워킹’하는 엄마는 아닐뿐더러 워킹대디라는 말은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결국 워킹맘이라는 단어 역시 육아는 엄마의 몫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습니다.

미국 유명 방송의 한 여성 앵커가 워킹맘이라는 단어 사용을 거부했다는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이 앵커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워킹맘으로서 부담을 느끼지 않느냐는 질문에 “‘워킹 맘(일하는 엄마)’이라는 표현보다는 ‘워킹 페어런트(일하는 부모)’로서 부담을 느낀다고 표현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사실 ‘육아는 여자의 몫이 아니라 부부가 모두 함께 하는 것이다.’라는 사회적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불과 20~30년 전만 하더라도 육아는 전적으로 여성의 책임이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일을 하는 여성들이 “아이에 대한 모성애가 없다.”는 비난은 물론이고, “돈 때문에 일한다.”는 손가락질까지 받았다고 하니 사회적 분위기가 얼마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런데도 아직 갈 길은 멉니다. 이제는 사회적 인식 변화를 뒷받침해 줄 조직문화의 변화가 중요한 상황입니다. 우리나라도 아빠가 양육에 참여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0년 상반기 육아휴직자 통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남성 육아휴직자는 1만 4,857명으로 전체 육아휴직자 가운데 24.7%에 불과했습니다. 그나마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4.1% 증가한 규모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고용부는 부모가 함께 아이를 돌보는 맞돌봄 문화가 확산하면서 남성 육아휴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 큰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통계 결과가 코로나19 확산이란 특수한 상황에서 나온 결과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를 추세적인 현상으로 보기는 아직 이른 것 같습니다.

내용 부문에서도 그렇습니다. 통계 결과를 살펴보면 육아휴직 사용자 비율이 300인 이상 대기업에 치우쳤습니다. 기업 규모별 남성 육아휴직자 비율을 보면 300인 이상 사업장이 56.6%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100인 이상~300인 미만 사업장은 13.9%, 30인 이상~100인 미만 사업장은 11.0%였습니다. 아직도 남성의 육아휴직은 대기업만의 잘 갖춰진 복지제도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실제 얼마 전 아이를 낳은 한 남자 후배는 “육아휴직 제도가 마련돼있지만, 업종의 특성상 보수성이 강한 회사다 보니 아직 남자가 육아휴직을 쓰는 데 대해 거부감이 심한 편이다.”며 “나도 사실 육아휴직을 쓰고 싶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속사정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제도적인 뒷받침도 필요합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워킹맘들은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개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하는 경향이 컸다고 합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현재 워킹맘들이 겪는 문제들 대부분이 사회 구조적 제약들로부터 인한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당장 이번 코로나19 사태에 일부 기업에서 코로나19 사태를 틈타 육아휴직 후 복직 근로자에 대한 부당전보, 육아휴직 후 사직 압박, 육아휴직 중인 기간제 근로자에 대한 퇴직금 미지급 및 계약 갱신 거절 위협 등 불이익을 준 사례가 다수 발생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라는 다소 극단적인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나, 이는 분명 일하는 여성에 대한 제도적 안전장치가 아직 미비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워킹맘을 비롯한 여성 인력의 활용은 빠르게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선택’ 아닌 ‘필수’인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일하는 여성의 행복이 가정의 행복, 나아가 대한민국이 행복일 수 있다는 말은 그리 틀린 게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앞서 말했듯 아직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멀지만 지난 수십 년간 일하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구조적 모순, 제도적 지원 등은 분명 개선돼 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더 달라질 것이라 믿습니다. 오늘도 열심히 아이를 키우며 일하는 나에게, 그리고 나의 동료들에게 ‘파이팅’이라고 외쳐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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