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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보다 무서운
빌딩 투기자본의 세계

권리금 감정평가, 세입자 분쟁 해결의 과제

글. 김노향 기자(머니S 산업부 차장)

P기업의 임대차계약 갑질 사건을 처음 제보받은 건 2017년. 이후 지금까지 3년의 시간 동안 필자는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임대료 상승 문제와 ‘건물주’로 대표되는 부동산 자본가의 갑질 실태에 대해 100건 넘는 기사를 보도했다. 취재 과정에 인터뷰하게 된 자영업자와 독립영화 감독, 감정평가사 3명을 여기에 소개한다. 이들은 자신만의 영역에서 상가 세입자와 연대하는 방식으로 투기자본의 문제를 사회에 알리고 있다.

# P기업 갑질 사건, 세입자 내쫓고 카페 운영

박지호 씨는 외국계기업 은퇴 후 서울 노량진 학원가에서 프랜차이즈 카페를 운영하던 자영업자다. 비교적 적은 자본으로 사업을 시작하다 보니 임대료가 싼 곳을 찾아 노량진에 정착했다. P기업이 소유한 노량진의 학원 건물은 박씨 계약 당시 전세금 1억 3,000만 원, 관리비 66만 원으로 인근 시세의 절반도 안 됐다.

이유는 외부 손님이 드나들기 힘든 접근성 때문이었다. 현장에 직접 가서 보니 건물은 버스가 다니는 도로 한가운데 있었다. 정류장과 거리가 멀었고 번화한 상권에선 한참을 걸어야 갈 수 있었다. 더구나 카페 출입문은 건물 정문과 반대 방향으로 나 있어 눈에 잘 띄지도 않았다. 학원 수강생이 아니면 굳이 일부러 카페를 찾아갈 이유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박씨의 카페는 5년 후 한 달 순수익이 800만 원을 찍는 핫플레이스가 됐다. 박씨는 외국계기업에서의 마케팅 경력을 살려 다양한 방식의 영업을 시도했다. 학원 수강생에게 특별 제공하는 커피 할인쿠폰과 영화 티켓 등을 만들었고 손님의 마음을 잡았다. 아르바이트생들에게는 인센티브를 지급해 5년 내내 근속한 직원도 있었다. 출입문 앞에 노상 불법 주차돼 있던 트럭들을 매일같이 구청에 신고하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가게가 자리를 잡는 데는 꼬박 5년이 걸렸다.

하지만 박씨는 5년 임대차계약의 종료를 앞두고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았다. 건물주인 P기업이 박씨의 카페 자리에 학원 수강생을 위한 북카페를 운영할 계획이라는 것. 박씨는 인테리어비용 1억 6,000만 원을 포함해 전 재산을 투자한 카페를 5년만 하고 접을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건물주가 원하는 대로 월세를 올려도 좋다는 조건을 제시했고 회장에게 “살려달라”는 편지를 수십 번 썼다.

훗날 2018년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 개정돼 임대차계약 보호 기간이 5년에서 10년으로 늘어났을 때 박씨는 “전 재산을 걸고 밤낮없이 매달린 가게를 10년만 할 수 있었어도 그렇게 억울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10년이라는 임대차 보호 기간은 여전히 한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자영업자에게 그리 긴 시간은 아니라고 그는 덧붙였다.

3년여의 소송 끝에 박씨는 결국 패소했다. 그리고 2019년 8월 강제철거를 당했다. 현행법은 건물주가 세입자를 퇴거시킨 자리에 영리 목적의 상업활동을 할 수 없도록 금지한다. P기업은 수강생들에게 무료 음료를 나눠 줄 것이므로 영리 목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박씨는 소송 진행 과정에 새 세입자를 구해 합법적인 권리금 계약도 맺었지만, 건물주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직원들을 시켜 카페 기물을 파손하기도 했다.

당시 P기업 임원과 기자가 나눈 통화 기록엔 “카페 돈은 다 우리 수강생들이 벌게 해 준 건데 고마운 줄도 모르고!”라는 말이 녹음돼 있다. 학원 수강생이 벌게 해 준 돈을 왜 건물주에게 고마워해야 하나. 뼛속까지 갑질 의식이 만연하지 않고는 쉽게 할 수 없는 말이다. P기업은 심지어 법을 가르치는 교육기업이다.

박씨는 이후 카페를 접고 소상공인과 연대해 사회에 목소리를 내는 시민단체 활동을 시작했다. 다음은 박씨를 취재하던 과정에 자연스럽게 알게된 정용택 <파티51> 감독과 조정흔 감정평가사의 이야기다.

“나는 두리반에서 죽을게.
당신은 아이들을 잘 거둬 줘.”
라고 했다던 두리반 주인의 말을 잊을 수가 없다.
# 궁중족발 건물주 “자본주의가 워킹하는 방식 몰라?”

2018년 서촌의 ‘본가궁중족발’ 사태. 가게 월세를 300만 원에서 1,200만 원으로 올린 건물주에 맞서던 궁중족발 주인이 무리한 강제철거 과정에 손가락을 절단당한 사건은 투기자본의 재산권 침해 문제를 사회적으로 알린 계기가 됐다. 궁중족발 건물주 A씨는 가게 안을 촬영하던 정용택 감독에게 “족발 값은 족발집 주인이 정하고 임대료는 건물주가 정하는 게 자본주의가 워킹(working)하는 방식이지.”라고 말하며 비아냥댔다.

정 감독은 2009년 재개발 철거에 저항하던 홍대 칼국숫집 ‘두리반’의 이야기를 독립영화 <파티51>로 제작해 이름을 알렸다. 돈이 없어서 공연장조차 빌릴 수 없던 가난한 기타리스트들이 철거라는 막다른 골목에 이른 가게를 무대 삼아 노래하며 서로 연대하는 모습은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이 영화는 제14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장편 경쟁부문, 제6회 상상마당 음악영화제 등에 초청됐고 일본 10여 개 도시로 수출됐다.

두리반 철거 후 11년이 흐른 2020년. 그 자리엔 AK&홍대 등 대기업이 세운 상업빌딩이 들어섰다. 서울의 명소로 변화한 길 맞은편 경의선숲길과 연트럴파크는 주말이면 관광객과 시민들로 북적인다. 깨끗하고 편리해진 복합몰이 좋아 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높은 빌딩을 올려다볼 때마다 “나는 두리반에서 죽을게. 당신은 아이들을 잘 거둬 줘.”라고 했다던 두리반 주인의 말을 잊을 수가 없다.

# 전문화된 감정평가, 세입자 눈물 닦아줬으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감염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자영업자 피해를 확산시키고 있다. 최근에는 상가 세입자의 권리금 분쟁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올해 8월 인터뷰한 조정흔 감정평가사는 “상가 세입자들이 건물주와 법적 분쟁을 벌이는 과정에 정당한 감정평가금액이 산정되지 않아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지정하는 부동산 분쟁 감정인, 서울시 상가건물임대차 분쟁조정위원회의 공정임대료 전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조 감평사도 앞선 박씨와 P기업의 소송 내용 및 재판 과정을 잘 알고 있다. 법원은 박씨가 P기업으로부터 보상받을 수 있는 영업 권리금을 ‘0원’이라고 판결했다. 카페 인테리어 등에 투자한 비용 1억 6,000만 원의 반의반도 안 되는 3,600만 원만 시설 권리금으로 인정했다. 궁중족발 사태 이후 법은 세입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지만, 벽은 여전히 높다.

서울 강남역, 홍대, 경리단길, 연남동….
곳곳에서 목격하는 급변하는 상권과
젠트리피케이션의 뒤에 우리와
더불어 사는 이웃의 눈물이 있다.

조 감평사는 최근 서울 번화가의 한 상가 세입자가 의뢰한 권리금 감정을 맡았다. 이전 세입자가 권리금을 부풀리기 위해 포스 매출을 조작, 형사처분을 받은 사건이다. 이 사건은 아르바이트생의 용기 있는 고발로 실체가 드러났다. 조 감평사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가 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고리인데 같은 세입자 상인끼리도 이렇게 가해자가 될 수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각종 개발사업과 도시재생 등으로 일어나는 환경적 변화, 소셜미디어를 이용한 상권 성장이 부동산 투기세력을 끌어들이고 세입자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고 지적하며 “작전세력을 통해 조작된 불로소득과 상가 투자자의 수익률 극대화 수단은 누군가의 전 재산과 인생을 건 대가”라고 꼬집었다.

그는 감정평가업계에서 부동산 문제를 거침없이 비판하는 논객으로 통한다. 올해 감정평가사 16년 차인 그는 언론매체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자신의 주관을 밝히고 때로는 적절한 대안도 제시하고 있다. 2018년 삼성 에버랜드의 공시지가 조작 의혹을 제기해 일반 국민에게 생소하던 감정평가 업무를 알리고 한국 부동산가격의 구조적인 문제를 이슈화시켰다.

자격증 취득 1년 차에 그가 목격한 뉴타운사업 과정은 개발이 인간의 삶과 터전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깨닫게 했다. 그래서 돈이 안 되는 일이라도 법 지식과 전문정보 취득에 취약한 경제적 약자의 편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조 감평사에 따르면 최근엔 부동산가격이 낮은 지역을 골라 작전세력이 파고들고 이들은 ‘떴다방’ 같은 방식으로 건물을 매집한다고 한다. 부동산가격 폭등과 자산 빈부격차 증가는 이런 투기 문제를 갈수록 심화시키고 있다. 이때 새로운 투자자에 의해 주인이 바뀌게 된 건물은 결국 세입자를 먹잇감으로 삼는다. 수익률을 가장 쉽게 극대화할 방법은 현 세입자를 내쫓는 것이다. 현행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은 임대료 급등을 막기 위한 방안으로 현 세입자와의 재계약 때에만 임대료 인상률을 제한한다.

서울 강남역, 홍대, 경리단길, 연남동…. 곳곳에서 목격하는 급변하는 상권과 젠트리피케이션의 뒤에 우리와 더불어 사는 이웃의 눈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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