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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트래블

우리에게 허락된 하루라는 시간
영화 <비포 선라이즈> 촬영지
오스트리아 비엔나

“모든 것엔 끝이 있어. 그래서 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지.”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배경으로 청춘남녀의 사랑을 그린 영화 <비포 선라이즈(1995년 개봉)>는 베를린 영화제에서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다. 재밌는 책을 읽으면 마지막 페이지로 향해 갈수록 천천히 읽고 싶은 것처럼 이 영화도 후반부로 갈수록 흘러가는
시간이 야속하기만 하다. 해가 뜨는 시간이 조금만 더 천천히 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영화에 빠져든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는 개봉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영상이나 스토리가 어색하지 않다. 화려한 영상 기법 없이 덤덤한 대화로 이어지는 영화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감성을 자극해 메마른 가슴에 설렘과 사랑의 감정이 고스란히 스며든다.
여행을 하듯 영화 속 장면마다 배경으로 등장한 장소를 눈여겨보는 것도 감상 포인트다.

글_사진. 박은하 여행작가

“정신 나간 소리처럼 들릴 수 있지만
말 안 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서.
너와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우린 뭔가 통하는 것 같아.”
<비포 선라이즈> 中
누구나 사랑에 빠지는 도시 ‘오스트리아 비엔나’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주인공 셀린느(줄리 델피)와 제시(에단 호크)는 비엔나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다. 프랑스 여자 셀린느는 부다페스트에 사는 할머니를 만나고 개강에 맞춰 파리로 돌아가는 길이고, 미국 남자 제시는 마드리드에 유학 간 애인을 만나러 갔다가 실연을 당하고 돌아가는 길이다. 처음 만난 사이지만 대화가 통해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둘이 탄 기차는 어느새 비엔나에 도착한다. 예정대로라면 셀린느는 계속 기차를 타고 파리까지 가야하고, 제시는 다음날에 출발하는 미국행 비행기를 탈 때까지 혼자 비엔나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제시는 셀린느에게 비엔나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자고 말하고, 둘은 목적지 없이 비엔나 곳곳을 누빈다. 영화 제목처럼 해가 뜨기 전까지 말이다.
영화 속 배경으로 등장하는 비엔나(Vienna)는 오스트리아의 수도이자 동서유럽의 관문이다. 중부 유럽 도나우강 상류에 위치하며 유럽에서 가장 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합스부르크 왕가(1273~1918년)의 통치를 거치면서 음악, 미술, 건축 등 예술을 꽃피웠다. 합스부르크 왕궁, 성 슈테판 대성당, 벨베데레 궁전, 쇤브룬 궁전 등이 비엔나의 주요 관광지로 손꼽히지만 영화에서는 기차역, 트램, 레코드숍, 놀이공원, 묘지, 골목, 카페, 바 등 일상적인 공간이 등장한다. 실제로 2000년대 초중반 유럽 배낭여행자 사이에서 <비포 선라이즈> 촬영지를 찾아가는 것이 유행이었던 적도 있었다.

TIP 오스트리아 비엔나 가는 법
항공편 : 비엔나 국제공항
유럽 각지 출발 기차편 : 비엔나 중앙역(Wien Hauptbahnhof), 서역(Westbahnhof), 빈 마이들링역 (Wien Meidling bahnhof)
“이렇게 석양도 있고, 관람차도 있고, 뭐랄까….”
“나한테 키스하고 싶다는 말 하려는 거야?”
<비포 선라이즈> 中
연인들의 필수 데이트 코스 ‘프라터’

<비포 선라이즈> 팬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셀린느와 제시의 첫 키스 장소는 놀이공원 대관람차 안이다. 영화에 나오는 놀이공원 프라터는 실제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놀이공원으로 1766년 황제 요제프 2세가 황실 사냥터로 쓰던 곳을 비엔나에 기부해 만들어졌다.
‘프라터’라는 이름은 라틴어로 초원을 뜻하는 ‘Pratum’에서 유래했다. 비엔나의 허파라 할 정도로 광활한 녹지가 펼쳐지는데 그 크기가 뉴욕 센트럴 파크 두배에 이른다. 비엔나 도심에서 전철을 타고 15분이면 닿을 수 있어 접근성도 좋다.
대관람차 ‘자이언트 페리스 휠(Giant Ferris Wheel)’은 1897년 프란츠 요제프 황제 즉위 50주년 기념으로 세워졌다. 연인과 함께 타기에 좋은 놀이기구지만 보통 대관람차 한 대 동시 탑승 인원이 10~15명 정도이기 때문에 영화에서처럼 오붓한 분위기는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높이 64.75m, 지름 65m 규모의 대관람차는 세월아 네월아 느긋하게 움직인다(1초당 75cm 이동). 하지만 꼭대기에 다다르면 비엔나 시내 풍경이 한눈에 펼쳐지는데 해 질 무렵에는 영화만큼 로맨틱한 분위기를 느껴 볼 수 있다.
프라터에는 회전목마, 꼬마열차, 디스코 팡팡, 귀신의 집, 롤러코스터 등 다양한 놀이기구가 많지만 우리나라 테마파크에 비하면 다소 고전적인 분위기다. 자유이용권이 없어 놀이기구마다 각각 티켓을 구입해야 하는 것도 특징이다. 프라터의 하이라이트는 공원을 관통하는 산책로 ‘하우프트알레(Hauptallee)’다. 6㎞의 산책로를 따라 계절마다 다양한 꽃이 피고진다.

TIP 프라터
비엔나 도심에서 전철로 15분 거리.
해 질 무렵 대관람차를 타고 내려다 보는 비엔나 풍경이 일품!
“내가 다른 곳을 볼 때
그 사람이 날 바라보는 눈빛이 좋아.”
<비포 선라이즈> 中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둔 고백의 시간 ‘카페’

비엔나는 카페의 도시다.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비엔나는 카페에 둘러싸인 도시다.”라고 했을 정도. 그의 말처럼 비엔나에는 1200여 개의 카페가 영업 중이다. 영화에서도 셀린느와 제시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특히 고풍스러운 카페에 마주 앉아 전화 상황극을 하는 장면이 ‘심쿵 포인트’다. 상황극을 통해 솔직한 마음을 고백하는데 서로에게 보내는 수줍은 시선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누군가를 좋아할 때의 감정이 느껴져 가슴이 설렌다. 둘은 그 감정이 사랑임을 확신한다.
우리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눈다. 누군가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사랑 고백을 하겠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빛을 하고서.
영화 속 카페 장면을 자세히 보면 비엔나의 커피 문화를 엿볼 수 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 잔 옆에 물 잔이 함께 놓여 있는데 이는 입을 헹구고 커피 본연의 맛을 음미하라는 배려다. 물은 커피가 빼앗아 가는 수분을 보충하는 역할도 한다.
커피 이야기가 나온 김에 ‘비엔나 커피’ 이야기도 풀어 볼까. 비엔나 카페에서 ‘비엔나 커피’를 주문하면 알아듣지 못한다. 우리나라에서 비엔나 커피로 알려진 휘핑크림을 듬뿍 얹은 커피는 아인슈페너(Einspanner)라고 한다. 아인슈페너는 ‘한 마리 말이 끄는 마차’라는 뜻이다. 과거 마부들이 한 손으로 말고삐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설탕과 생크림을 넣은 커피를 들고 마신 데서 유래했다.
비엔나의 카페 문화는 역사가 깊다. 1786년에 문을 열어 왕궁에 커피와 베이커리를 납품한 카페 데멜(Cafe Demel), 1876년에 오픈해 문화 예술인의 사랑방으로 자리 잡은 카페 첸트랄(Cafe Central) 등은 2020년 아직도 성업 중이다.

“오늘이 우리에게 유일한 밤이죠.
그녀가 와인 한 병을 사달라는데 제가 돈이 없어요.
주소를 알려 주시면 제가 틀림없이 돈을 보내드릴게요.
오늘 밤을 완벽하게 만들어 주세요.”
<비포 선라이즈> 中
와인 한 병을 흔쾌히 내주는 ‘바’

셀린느와 제시는 처음이자 마지막 밤을 보내는 것을 우울해 하지 않기로 한다. 지불할 돈이 없지만 바에 들어가 운 좋게 와인을 얻는다. 둘은 공원에서 와인을 마시며 함께 아침을 맞이한다.
와인도 비엔나의 명물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수도에 와이너리가 있지만 와인 생산량이 워낙 적어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비엔나 와인을 맛보려면 바보다는 호이리거를 추천한다. 오스트리아에서는 그 해 수확한 포도로 만든 햇와인을 호이리게(Heurige)라고 하고, 햇와인을 파는 주점을 호이리거(Heuriger)라고 한다. 직접 포도를 수확해 와인을 만드는 양조장에서 주점도 운영한다. 고급 주택이 모여 있는 제10구. 암 파르플라츠 호이리거가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선상 카페 악단처럼 호이리거에도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음악을 연주하는 아코디언 연주자가 있다.

여행과 사랑의 공통점은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 <비포 선라이즈>를 보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누군가를 좋아하기 시작 할 때 느끼는 설렘. 잠시 잊고 있던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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