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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돼버린 재난,
갈 곳 잃은 사람들의 갈 곳은

글. 윤지은 기자(아주경제)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퀘렌시아’가 존재한다. 필자에게는 여행이 쉴 곳이다. 여행을 떠나고, 일상에서는 만날 수 없는 사람과 인연을 맺고, 꽤 오랫동안 곱씹을 만한 추억을 남기는 것. 이런 것들로 잠시 쉬었다가 또다시 달릴 힘도 얻었다.

예고 없이 닥친 코로나19는 더 이상 퀘렌시아를 바깥에서 찾을 수 없도록 했다. 코로나19가 잠깐 소강상태를 보였던 지난 4월, 계획 없이 제주행 항공권을 끊은 게 마지막이었다. 앞으로 얼마간이나 마지막을 그리워해야 할지, 다시 또 훌쩍 떠날 날이 언제쯤 올지 잘 모르겠다는 기분이 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할 것이다. 단지 쉴 곳을 잃어버린 사람뿐 아니라, 일할 곳을 잃고 먹고 살 궁리를 다시 해야만 하는 사람들도 보이는 것보다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삶이 제자리를 찾긴 할 테지만, 그것이 언제가 될지 알 수 없고 설령 그렇게 된다 해도 유사한 비극이 또 오지 말라는 법이 없는 삶.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지금을 살아가고 앞으로를 살아갈 생각일까. 필자가 여행 대신 책을 꺼내읽는 새 취미를 만든 것처럼 다른 돌파구를 찾았을까, 아니면 찾고 있을까.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우리 주변의 이야기를 청해 들었다.

20대 여행인솔자의 이야기
“여행하는 일, 여전히 사랑해...
다만 여러 빛깔로 살아갈 것”

“인솔자로 일하는 한 달은 제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요. 리더십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었는데, 저를 믿고 따라오는 수십 명의 사람을 보면 가슴이 뛰어요. 그리고 이들의 여행이 내 여행만큼 가치 있도록 노력하고 싶어져요.”

27세 김지영씨는 여행이 좋아서 여행을 일로 삼고 지난 1년 쉼 없이 뛰었다. 1년에 여섯 번, 부푼 꿈을 안은 여행객과 함께 지구별을 유랑했다. 여행지에서 한 달, 돌아와서 한 달, 다시 떠나면 또 한 달. 이런 삶이 익숙해질 때쯤 코로나19가 닥쳤다.

“첫 직장은 다른 여행사랑 달랐어요. 2030만 타깃팅하고 '유럽에서 한 달 살기'에 특화된 여행사였죠. 작은 회사라서 불합리한 점도 많았지만, 사회초년생인 제가 바로 현장에 투입돼 일할 수 있었고, 큰회사의 인솔자보다 할 수 있는 영역이 넓었던 건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는 6개월간 그곳에서 일한 후 TC(국외여행 인솔자 자격증)를 받기로 했지만 회사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 다른 곳에서 꿈을 이어나가야만 했다.

“TC를 받아야 ‘진짜’ 인솔자로 대우받잖아요. 약속을 지킬 만한 회사로 옮겼고, 아일랜드로 출국할 날만 기다리던 때예요. 회사로 예약취소 전화가 빗발쳤어요. 정직원도 하나둘 자취를 감췄죠. 무너져내리는 게 뻔히 보이는 모래성에서, 아무리 취업이 힘들다지만 남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어요.”

이날 이후 지영씨는 어느 회사에도 취업하지 못했다. 워낙 여행을 좋아하는 터라, 이 일을 포기할 생각은 없다. 언젠가 다시 올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준비할 때가 온 것 같다고 그는 생각한다.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어요. 한국에 여행 오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가이드하기 위해 꼭 있어야 하는 건데, 이걸 취득하면 TC도 같이 받을 수 있어 일석이조죠. 자격증을 따서 큰 여행사에 가고 싶어요. 명확히 요구하고 합당한 대우를 해주는 그런 곳이요.”

하지만 지영씨는 그의 미래에 가이드라는 하나의 직업만 있을 것 같진 않다고 했다. 그건 여행을 사랑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코로나19가 끝나도 여행 자체가 전과 같을 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가이드로서 언택트(Untact·비대면) 사회를 대비하지 않으면 거리에 나앉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요.”

“가이드를 하면 버스 안에서 우리가 여행할 지역의 역사부터 전부 안내하는 코너가 있거든요. 그동안은 멘트하고 끝이었는데, 앞으론 이걸 오디오나 PDF 파일 등 ‘콘텐츠’로 남기면 어떨까 싶어요. ‘인솔자가 들려주는 런던’이라는 주제로 책을 엮어내도 좋겠죠. 지금처럼 가이드 일을 하지 못할 때, 또 다른 수입원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는 ‘지금, 여기’에서도 할 수 있는 걸 계속한다.
“에어비앤비에서 ‘온라인 체험’이라는 새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만약 누군가가 악기 배우길 원하고, 제가 악기를 가르칠 수 있다면 우리가 온라인으로 만날 수 있게 다리를 놔주는 거예요. 저는 ‘우쿨렐레’ 연주를 취미로 하거든요. 우쿨렐레 강의를 올려놓고 에어비앤비 컨펌을 기다리는 중이에요. 7월 4일에는 우쿨렐레 클래스를 열기로 했어요. 우쿨렐레는 조그맣고 가볍고, 배우기 쉬운데도 소리가 기타보다 좋죠. 누구든 이 악기에 빠질 수밖에 없을 거예요.”
기타 대신 배웠다가 인생의 짝꿍이 된 우쿨렐레는 이미 그의 또 다른 직업이다.

“최근에는 우쿨렐레 회사에서 제 유튜브 영상을 보고 악기를 지원해주고 싶다는 연락이 왔어요. 저를 통해 우쿨렐레를 구매하는 사람에게 10% 할인 혜택을 주고, 저는 20% 커미션을 받는 조건으로 1년간 계약도 맺었죠. 나 좋자고 만든 우쿨렐레 악보를 판매도 해요. ‘마이뮤직시트’라는 플랫폼이 있거든요. 곡당 2,300원에 올려둔 상태예요.”

좋아하는 일을 직업과 연결하는 건 지영씨의 특기다. 그는 지금 KT ‘광화문 2번출구’ 유튜브 페이지에서 긴급재난지원금 내용을 안내하는 성우로도 활동하고 있다. 어릴 적 꿈꾼 방송사 공채 성우는 아니지만, 그로서는 고무적인 일이다.

“이런 일 하나하나가 대단한 수익을 가져다주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기대하지 않았는데, 행운처럼 오는 것도 나쁘지 않더라고요. 지금은 커피값 정도 벌지만 앞으로는 다를지도 모를 일이죠.”

게스트하우스 호스트 노사장의 이야기
“ 퇴사 후 화려했던 부활...
다시 반등할 기회 노리죠”

29세 노사장에게 쉬운 일은 없었다. 한창 취업 준비를 할 땐, 번번이 대기업 최종 문턱을 넘지 못했다. 곡절 끝에 취업한 회사는 오래 다니지 않았다. 회사원이 아니어도 먹고 살 방도가 있을 것 같았다. 이른 나이에 게스트하우스를 전대차하는 새 사업에 뛰어들었고, 성수기엔 월 700만~800만 원의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그런 그가 코로나19로 또 한 번 변곡점을 맞았다.

“상황이 많이 심각해요. 원래 세 개를 했는데, 두 개는 헐값에 처분한 상태예요. 나머지 포룸(Four room)짜리는 계속 운영하면서 시기를 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내놨어요. 그런데 사이즈가 있다 보니 쉽지가 않네요. 그렇다고 시설비로 들인 돈을 전부 포기하자니 미칠 것 같고 말이죠.”

그가 아직 운영하고 있는 게스트하우스는 한 달 월세만 250여만 원에 달한다. 현행법상 도시민박업은 외국인을 대상으로만 해야 하는데, 외국인 손님이 아예 끊긴 지금은 내국인도 받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그는 전한다.

“월세만 까먹자니 버티기가 어려워서 울며 겨자 먹기로 내국인도 받지만, 진상 손님이 적지 않은 데다 메울 수 있는 액수도 100만 원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

들이는 노력에 비해 많은 수입을 가져다주는 호스트 일을 그만둘 생각은 없다. 호스트 생활을 하면서 경제적 자유를 얻고 좋아하는 여행과 하고 싶은 공부에 보다 몰두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언제 풀릴지 알 수 없는 코로나19 정국에 마냥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도 생각한다. 무엇보다 지금 같은 파도가 또다시 오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생각보다 시기가 앞당겨졌지만, ‘인생 3막’을 준비하지 않을 수 없게 돼버렸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보려고요. 시험은 2차까지 있는데, 시간적·금전적 여유가 많지 않아 1·2차 한 번에 붙는 걸 목표로 해요. 10월 시험까지 140일~150일 정도 남았거든요. 합격하면 곧장 개업을 하든, 소속 공인중개사로 일하든 하고 싶어요. 공인중개사로 일하더라도, 코로나19가 끝나면 다시 호스트 일도 시작하고 싶어요. 초기 투자비용이 크지 않아 비교적 쉽게 시작할 수 있으니까요. 성수기 때는 제게 떨어지는 액수가 700만~800만 원에 달했죠. 회사 다닐 때랑 비할 바가 되지 않아요. 또다시 코로나19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말란 법은 없지만, 이런 일이 그렇게 자주 올까 싶은 생각도 해요. 올해는 어렵더라도 상황은 좋아질 테고, 규제가 풀리면 수요가 물밀 듯하겠죠. 코로나19 때문에 주변에 문 닫은 게스트하우스가 많은데, 공급이 줄어든 상황에서 수요가 폭발하면 또다시 성수기가 오는 것 아니겠어요.”

코로나19가 계기였지만 공인중개사 공부는 이전부터 관심이 있던 분야다.

“호스트 일과 병행하면 시너지가 날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공부량도 많고, 실무에서 쓸 일이 있을까 싶은 공부도 많지만 부동산중개법이나 세법은 일하면서 큰 도움이 될 것 같았죠. 그래서 취미처럼 공부해온 게 이렇게 진지해졌네요. 처음에는 원룸 중개부터 시작하겠지만, 나중에는 건물 매매도 하고 토지나 경·공매 쪽 공부도 하고 싶어요. 공인중개사가 취득하면 좋은 세무사 자격증도 관심 분야죠. 예전에 회계사 공부를 잠깐 했는데, 회계사와 세무사가 겹치는 부분이 많아요. 그간 공부한 게 아깝기도 했는데 마침 잘 됐죠.”

주변에는 그와 처지가 비슷한 친구들이 많다. 저마다 색깔은 달라도 살길을 찾느라 바쁜 것 같다고 그는 전한다.

“저가 항공사(LCC)에 다니는 친구가 있어요. 4개월간 유급휴직 중인데, 기본급만 받고 근근이 지내죠. 이 친구는 아예 다른 일을 할 모양이더라고요.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에요. 필라테스 강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최근에 학원도 등록했죠. 학원비만 800만 원가량인데, 아직은 소속이 있으니 대출받아 해결했다고 들었어요. 간혹 전 직장 이야기를 전해 들어요. 그 회사의 자랑 중 하나가 IMF 때도 월급이 밀리지 않고 나왔다는 건데, 최근 2주간 무급휴가를 쓰라고 직원들에 권고했다더군요. 우리보다 비교적 덜할뿐, 다들 똑같이 힘든 것 같아요.”

힘들어도 생각보다는 스트레스가 크지 않다고 그는 말한다. 무너질 것 같던 때는 뜻밖의 지원군이 큰 힘이 돼줬다.

“정말 힘들 때, 임대인에게 장문의 카톡을 보낸 적이 있어요. 주 고객이 외국인인데 매출이 마이너스라 상황을 봐서 협조해줄 수 없겠냐는 내용이었죠. 10만~20만 원씩 깎아주는 임대인 분도 계셨고, 어떤 분은 한 달 치를 통 크게 까주기도 했어요. 그 다음 달에도 30%를 제해주고요. 정말 감사한 분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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