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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강이뼈와 매화향,
그리고 갭투자를 논하며

글. 김희준 차장(뉴스1)

“사유재산 제도의 보장은 공동체 생활의 조화와 균형을 깨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해야하며
투기적 거래는 엄청난 불로소득을 가져와 정의롭지 못한 부의 축적과 퇴폐향락성 과소비와 연결되기 쉽고
물가 상승의 원인이 되며 국민의 건전한 근로의욕을 저해하고 계층 간 불화와 갈등을 심화시키는 것이므로 규제해야 한다.”

(1989년 12월 22일 헌법재판소 토지거래허가제 ‘합헌’ 결정문 중)

정부가 6월 17일 부동산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이를 통해 정부는 갭투자자가 쌈짓돈으로 썼던 전세자금대출도 막고 청담동 등 강남권의 거래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었네요. 이번 대책으로 ‘내 집 마련’ 투자전략이 어그러지거나, 어쩔 수 없이 손실을 얻게 되는 집주인, 투자자도 있을 것으로 압니다. 실제로 일각에선 강남 거래를 묶은 토지거래허가제가 사실상 주택거래허가제로 작용한다며 위헌을 운운하고 있습니다.

관련기사를 쓰기 위해 자료를 찾아보니 토지거래허가제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문을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1989년 말에 나온 결정인데요. 이 당시라면 헌재의 결정이 지금보다 더 보수적으로 책정될 때인데도 지금 이 순간에 더 의미심장합니다.

투기적 거래는 엄청난 불로소득을 가져와 정의롭지 못한 부의 축적을, 그리고 국민의 건전한 근로의욕을 저해한다는 문구가 특히 그렇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 투기거래의 양상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전세보증금이 모자라서 저금리로 대출받도록 배려한 제도가 머리 좋은 이들의 갭투자 자금으로 흘러가고 이를 막으니 ‘아우성’ 칩니다. 당장 집을 나가게 됐다는 아우성 뒤편을 살펴보면 자기가 산 집은 전세를 주고 그 돈으로 전세를 얻되 부족한 돈을 전세자금대출로 메운 이들이 태반입니다.

기사를 통해 ‘전세대출’ 끼고 집사는 게 당연한 건지를 물었습니다. 그 기사에 달린 댓글들이 가관입니다. 한 누리꾼은 “갭투자를 죄로 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놀랍다”며 “집 없는 사람들인가 본데, 자기가 집 없는 것과 갭투자를 나쁘게 보는 게 왜 연결되는지 그냥 그렇게 투자해서 돈 버는 사람들을 보면서 배가 아픈 거로 보인다”고 적었습니다. 또 다 같이 고생하는데 머리 써서 재산 불리지 말라는 의도인지 반문하기도 합니다.

문명의 시작을 부러졌다 붙은 흔적이 있는 정강이뼈에서 찾는 인류학자가 있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약육강식에 세계에서 정강이뼈가 부러진 동료를 치료하고 다 나을 때까지 음식을 나눠먹은 사회가 진정한 문명이기 때문이랍니다. 바로 이해와 배려의 문화입니다. 다시 돌아와 갭투자자의 관점에서 봅시다. 액수가 한정된 전세자금대출을 자기 집 마련에 쓸 경우 정작 필요한 대출을 받지 못하는 세입자를 고민해봤는지 궁금합니다. 그 자금을 그렇게 전용해도 단순히 머리 써서 재산 불리는 것으로 치부하는 게 맞는지요.

부끄러움이나 죄책감 따위를 묻는 게 시간 낭비가 될 만큼 ‘이익’ 앞에서 진정한 문명은 사라진 것 같습니다. 넓게 보면 제도의 틈새를 활용해 집으로 돈을 버는 이들의 방식도 정당한지 봅니다. 상대적으로 수십 년간 건전한 근로를 통해 집을 마련하려는 이들은 갭투자자와 현금부자들이 다락같이 올려놓은 집값에 좌절합니다. 아니면 이기적인 투기 사회에 편승하던가요. 사회는 이렇게 각박해집니다. 주거는 불안해지고 건전한 경제를 위한 피가 되어야 할 돈은 부질없이 부동산에 묶입니다.

퇴계 이황은 숨을 거두기 전 ‘저 매화에 물을 줘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습니다. 처음 들었을 때는 평소 아끼던 매화를 마지막까지 아끼다니 참 낭만적인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오늘날 집값에 일희일비하는 군상을 보며 이황 선생의 말을 곱씹어보니 새삼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화는 오래전부터 선비의 고고한 기풍을 나타내 사군자 중 으뜸으로 손꼽힙니다. 매화에 물을 주라는 뜻은 고고한 기품을 유지하도록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사실 오늘날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이익을 취할 때 최소한 방법과 방향의 정당성은 고민해봐야 합니다. 투기수단이 아닌 주택, 집 하나는 편하게 사거나 빌릴 수 있는 그런 향기 나는 사회는 힘들까요. 최소한 이기심은 걷어냅니다. 나보다 못한 이를 위해 마련한 전세대출의 틈새를 끼어들거나, 아니면 투기 욕심을 정책의 피해자인 양 포장해서 이야기하지는 않아야 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토지와 주택의 공정한 가치를 저울질하는 감정평가사에게도 한 번쯤은 고민할만한 화두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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