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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PA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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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효용법칙으로 본
민간택지분양가상한제

박일한 기자(헤럴드경제 부동산팀장)

19세기 말 등장해 지금까지 경제학의 주류로 자리 잡은 신고전학파의 핵심 이론은 ‘한계효용(marginal utility)’이다. 워낙 강력한 개념이어서 경제학 역사에서 ‘한계혁명’으로 불린다. 신고전학파가 등장하기 전까지 경제학에서 가치는 상품이나 재화의 속성에서 나온다고 봤다. 노동이 얼마나 투입됐는지(노동력), 얼마나 유용한지(유용성), 희소한지(희소성) 등에 따라 가치가 결정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한계효용학파의 생각은 달랐다. 상품의 가치는 주관적이어서, 상품 그 자체가 아니라 가치를 평가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고 판단했다.

물을 보자. 평소 1리터 수돗물은 10원도 안 되는 돈으로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사막을 걷는 상황이라면 100만 원이라도 내겠다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반대로 올해 깐느 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인 <기생충>의 한 장면처럼 장마로 물난리가 난 지역에서 물은 수천만, 수억 원이라도 내고 퍼 없애버리고 싶은 대상이다. 물은 그 자체로 가치가 따로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이야기다.

한계효용에서 ‘한계(marginal)’는 ‘추가적인’이란 뜻이다. 빵을 한 개 먹을 때와 두 개째 먹을 때, 세 개째 먹을 때 추가적인 효용은 계속 감소한다. 이를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라고 한다. 네 개째 먹을 때는 구역질이 날 수도 있다. 같은 재화지만 가치는 계속 달라진다. 효용이 어느 정도 한도 밑으로 떨어지면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우유보다 빵을 만드는데 더 많은 노동량이 투입돼도, 일정 한계를 넘으면 우유를 선택하는 게 훨씬 합리적이다.

‘한계생산체감의 법칙’도 있다. 노동력, 자본, 자재 등을 추가로 투입할 때마다 생산이 줄어드는 현상이다. 100명이 정원인 공장에 90명만 일한다고 하자. 이때 정원이 찰 때까지 인원을 늘리면 그만큼 생산량이 증가한다. 하지만 정원을 초과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늘어날수록 빈둥거리는 사람이 생기고, 비효율이 커진다. 기계설비, 자재 활용도도 떨어진다. 100명까진 한 사람당 10개씩 1000개를 생산했다면, 101명부턴 1010개가 아니라 1005개만 생산할 수 있다. 102명을 투입했는데 1020개가 아니라 1007개로 추가 생산량이 더 감소한다. 이렇게 일정 한도를 넘으면 한 명 추가될 때마다 늘어나는 생산량은 줄어든다. 이때 나머지 2명은 공장이 아닌 다른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합리적 선택이다.

한계효용 이론의 핵심은 최대의 효용, 최대의 생산성을 얻기 위해선 앞으로 얻게 될 ‘다음 증가분’ 효용에 집중하라고 가르친다는 것이다. 효용은 계속 줄고 변화한다. 처음 먹은 빵의 효용을 머릿속에 계속 그리면서, 우유를 선택하지 않고 억지로 빵을 하나 더 먹는건 전혀 경제적이지 않다.

한계효용 이론은 일상생활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때도 상당히 도움이 된다. 결혼한 신혼부부가 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결혼식이 예정보다 1시간 지연됐다. 자연히 신혼여행지로 출발하는 비행기 시간도 촉박해졌다. 비행기 시간에 맞추려면 결혼식 후 피로연에 머물 시간이 10분도 채 안 된다. 비행기 출발을 저녁으로 늦추는 방법을 찾아보니 변경 수수료를 30만 원이나 내야 한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수수료를 내는 게 아까워 급히 예식장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경제적으로 사고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계효용을 아는 사람이라면 판단이 다를 것이다.

한계효용식 사고는 내 앞에 놓인 ‘다음 증가분’만 염두에 두는 것이다. 어떤 과정에서 피로연에 참석하지 못하게 됐는지는 잊어라. 지금 내 앞에 놓인 효용만 따져보자. 피로연에서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맛있는 것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고, 평생 기억에 남을 추억을 쌓을 기회, 그들과 함께할 시간의 가치가 30만 원 보다 작은가? 아마 대부분 가장 합리적인 경제적 판단은 30만원을 내고 비행기 티켓을 바꾸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경제학의 이런 한계효용식 사고방식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게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다. 분양가상한제는 집의 가치를 택지비와 건축비, 가산비로 따져 일정 금액 이상으로 받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민간에 짓는 집값을 그렇게 정부가 강제로 규제하는게 자유 시장 경제 논리를 채택한 나라에서 타당하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나아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고팔 수 있는 모든 물건의 가치가 개개인의 필요와 기호, 습관, 상황 등에 따라 좌우되는 데, 이를 정부가 일률적으로 규제할 수 있겠느냐는 문제가 제기된다.

집의 가치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에게 집은 그냥 잠을 자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사회적 위치를 드러내는 과시소비재다. 예를 들어 ‘조망권’만 해도 그렇다. 강남 한강변 아파트 단지에서 한강이 보이는 층과 보이지 않은 층의 가격 차이는 2억~3억 원인 경우가 흔하다. 조망권을 누리는 대가를 수억 원씩 더 주고 사는 것이다. 그런데 저층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다르다. 위로 올라가는 것보다 걸어서 바로 들어가는 게 편하다고 생각한다. 땅과 가까워 건강에도 더 좋다고 생각한다. 이들에게 조망권은 아무가치가 없다.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의 가장 큰 문제는 정책 대상과 정책 효과가 ‘미스매치’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정부는 분양가상한제를 서민 중산층을 위한 대책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부자들을 위한 것일 수밖에 없다.

상한제 규제 대상 아파트는 집값 상승률 등을 고려해 선택하기 때문에 서울이나 경기도 일부 지역의 인기 아파트 단지가 될 수밖에 없다. 서울 아파트 평균 시세만 8억 원 이상인 상황이므로 대부분 9억 원 이상인 초고가 아파트일 것이다. 이미 관리처분인가까지 받았는데 정부가 분양가 상한가 대상에 포함시키겠다고 벼르는 서울의 재건축 단지만 따져보자. 둔촌주공, 개포주공1단지,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신반포4지구, 미성·크로바 등 강남 주요 인기 재건축 단지가 모두 해당한다. 아마 강남 최고가 아파트가 이 중에 나올 것이다.

분양가가 9억 원을 넘으면 중도금 집단 대출을 받을 수 없다. 분양을 받으면 분양가를 현금이나, 개인 대출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수억 원씩 은행에 넣고 사는 현금 부자가 아니라 매월 월급 받아 살아가는 중산층 서민에겐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 1분위(하위 20%), 2분위 소득자가 중간가격(3분위) 주택을 사려면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13.7년에서 30.6년을 모아야 한다. 중간층인 3분위 소득자도 9.2년 걸린다. 3분위 소득자가 주로 강남권 주택에 해당하는 5분위(상위 20%) 주택을 사려면 27.7년 걸린다. 생활비를 절반 쓴다고 가정한다면 내 집 마련 소요 기간은 여기서 배 이상 늘어난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분양가상한제는 집값 상위 20%의 가격을 낮출 테니, 2~4분위 사람들도 한 번 사보라고 부추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출이 막힌 이들이 이런 고가주택을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더 많다.

애초에 상위 20% 주택은 어차피 상위 20%만이 들어가는 것이라고 인정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돈 많은 이들에게 굳이 분양가상한제를 통해 ‘후진’ 집을 지으라고 할 이유가 없다. 감당할 능력이 있는 부자들이 취향과 니즈에 맞는 고급 주택을 짓겠다는 데 왜 정부가 막으려고 하느냐는 건설사 측 논리가 설득력을 갖는 대목이다.

상위 20%(5분위)와 하위 20%(1분위) 사람들은 원하는 주택이 다를 수밖에 없다. 교육 등 주변 환경, 필요한 사양 등에서 모두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작년 말 KB국민은행에서 발간한 <부자 리포트>가 있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에 금융자산 10억 원 이상 보유한 부자가 27만 8000명이나 된다는 내용이다. 2013년 16만 7000여 명에서 매년 평균 3만 명 정도씩 늘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부자들은 부동산 자산을 선호한다. 이들 부자들이 보유한 부동산 자산은 금융자산의 10배는 될 것이라는 게 PB(프라이빗 뱅커)들의 설명이다.

30만 명에 조금 못 미치는 이들의 움직임은 고가 주택시장에 가장 큰 변수다. 이들이 강남 아파트의 주요 수요층이다. 요즘 은행 PB들에게 ‘한강 조망권 좋은 새 아파트를 무조건 잡으라’고 한다는 게 이들이다. 그런데 강남에 있는 아파트는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를 다 합해도 30만 채가 안된다. 부자들이 더 비싼 돈을 기꺼이 낼 수 있는 ‘희소성’ 있는 단지가 강남권에 몰려 있다는 이야기다.

대한민국에서 아파트는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 IMF 구제금융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잠시 삐끗한 적은 있지만 곧 회복했다. 더군다나 강남 인기 아파트는 가장 확실한 투자 대상이며, 자녀들에게 좋은 대학을 약속하고(유명 학군), 교통이나 쇼핑 등 모든 면에서 가장 편리하며, 유행을 선도하고, 무엇보다 자존심을 세울 부자들이 대거 몰려 사는 곳이다. 이런 프리미엄이 유지되는 한 상위 20% 부자들은 강남 고가 아파트에 대한 니즈는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분양가상한제로 강남의 고가 아파트 가격의 한도를 정한다고 이런 부자들의 욕망을 막을 수 있을까. 불가능한 미션이라고 봐야 한다.

경제학에서 한계효용 중심의 사고방식은 다음 증가분에 있다. 지나간 매몰비용은 과감히 포기한다. 과거보단 미래를 지향한다. 분양가상한제를 추진하는 정부판단도 그랬으면 좋겠다. 도대체 지금 분양가상한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효용이 무엇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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