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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제도 다시 위상 찾기를

글. 한동훈 기자(서울경제신문 건설부동산부 차장)

2022년 하반기부터 최근까지 부동산 시장에서 가장 큰 이슈는 ‘전세’였다. 한국 주택 임대차 제도의 상징이었던 전세는 전례 없이 위상이 곤두박질쳤다. 이른바 ‘빌라왕’, ‘건축왕’으로부터 촉발된 전세 사기로 일부 피해자들이 극단적 선택까지 하면서 제도의 신뢰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또한, 역전세, 깡통전세 등의 용어가 언론을 도배하면서 빌라 시장에서는 ‘탈(脫)전세’ 흐름까지 만들어졌다. 정부는 전세 사기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과 대책을 부랴부랴 내놨지만, 2년 전 도입된 임대차 3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 상한제·전월세 신고제) 영향으로 전셋값이 치솟은 후 현재는 급락해 하반기 역전세 리스크가 더 커질 것이란 경고까지 나오고 있다.

전세에 대한 불신이 커진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지난해 발생한 전세 사기 때문이다. 정부가 특별단속을 실시한 결과 다양한 유형의 전세 사기가 적발됐다. 피해 규모도 컸다. 빌라왕에 의한 전세 사기가 발생한 서울 강서구의 전세 사기 의심거래 보증금 피해 규모는 833억 원에 달했다. 조직적 전세 사기 사례인 인천 건축왕 사건으로 이목이 집중됐던 인천 미추홀구도 보증금 피해액 합계가 205억 원을 기록했다.


또 이번 조사를 통해 국토교통부가 수사 의뢰한 거래의 피해상담 임차인은 558명이었는데, 이 중 2030 청년층 비율이 61.3%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청년들 입장에서는 보증금 1억 원 안팎의 빌라나 소형 아파트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 매매가와 전셋값 차이가 거의 없는 이런 물건들을 구매하면서 전세 사기의 주요 표적이 된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역전세 우려까지 고조됐다. 부동산 R114에 따르면 현재의 전셋값 수준이 유지된다고 가정할 경우, 하반기 계약의 58%가 역전세 위험에 노출될 것으로 예측됐다. 또한, 직방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에서 내년 상반기까지 1년 내 계약이 만료되는 전세보증금 총액이 300조 원에 달한다. 같은 기간 역대 최대 규모다. 전국 평균 전세가격이 2년 전에 비해 10% 넘게 하락한 상황을 감안하면 전세보증금 미반환 리스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역전세는 최근 들어 새롭게 부각된 이슈는 아니다. 신도시 등에서 입주 물량 폭탄으로 전셋값이 하락해 기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내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례는 언론에서 수없이 다뤄졌다. 문제는 이번 역전세가 어떤 특정 지역에서 국지적으로 발생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2년 전 부동산 가격 급등과 임대차 3법 영향으로 당시 전세 계약이 높은 가격으로 체결됐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매매가와 함께 전셋값이 떨어지면서, 전세 만기가 도래하는 올 하반기에는 전국에서 집주인이 기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내주지 못하는 사례가 잇따를 것이라는 분석이다.

전세를 둘러싼 파장이 지속되면서 전세 제도 전반을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지난달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전세 제도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해온 역할이 있지만 이제 수명을 다한 게 아닌가 본다.”고 답해 전세 제도 폐지론에 불을 댕겼다. 전세를 아예 없애는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오자 그는 “전세 대출을 끼고 갭투자를 하고, 경매에 넘기는 것 빼고는 보증금을 돌려줄 방법이 없는데도 천연덕스럽게 재테크 수단인 것처럼 얘기되는 부분은 손을 봐야 한다.”고 진화에 나섰다.

전세를 없애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본다. 전세 제도는 우리나라에서 오랜 기간 임대인의 자산 증식의 수단으로 그리고 임차인의 주거 사다리로 존속해왔다. 집주인은 세입자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받아 금융기관에 넣어 이자를 얻거나 개인적인 목적으로 활용했고, 임차인은 임대료 부담 없이 보증금을 맡겼다가 계약 만기 후 돌려받는 식으로 주거비 부담을 줄여 내 집 마련의 발판으로 삼아왔다. 집주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못 돌려받을 수 있다는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전세는 치솟는 월세의 대안으로 임대차시장에서 여전히 선호를 받는 제도다. 지난해 전세 대출 금리가 오르면서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거래 건수 중 전세 비중은 50%대로 내려앉았지만, 올해 들어 다시 금리가 내림세를 보이자 60%대를 다시 회복했다.


그렇다면 원희룡 장관의 말대로 전세의 부작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제도 개편을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토교통부 측도 전세 제도 자체를 손보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대신 전세 제도를 악용해 집주인이 감당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서서 많은 집을 사고, 이로 인해 임차인이 피해를 보는 부작용을 막는 방안을 찾는 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가장 대표적인 게 무자본 갭투자 제한이다. 국토교통부의 조사에서 임대사업자 A씨는 매맷값보다 전세보증금이 더 높은 오피스텔을 자기자본 없이 임차인의 보증금으로 29채나 매수했는데, 전세 계약 종료 시점이 다가왔을 때 계약 당시 전세가로 임차인을 못 구하게 되자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해 피해를 줬다. 이에 집주인의 무한대 갭투자를 막는 방향의 대책이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전세보증금을 매매가의 70% 이하로 규제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거론한다.

에스크로(Escrow, 결제대금 예치) 제도도 무자본 갭투자를 막는 방안으로 평가받는다. 에스크로는 전세보증금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제3의 금융기관에 예치하고, 집주인은 그에 대한 이자를 받는 방식이다. 다만 전세보증금 전부를 에스크로에 놓으면 집주인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한 만큼 보증금의 10~20%가량을 제한적으로 예치하는 것을 검토해 볼 수 있다. 이 경우 집주인의 무한대 무자본 갭투자도 막을 수 있다.

전셋값 폭등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이전 정부 시절 도입한 임대차 3법도 손질할 것으로 보인다. 계약갱신청구권제는 전세 계약 기간을 최대 4년(2+2년)까지 보장하는 것이며 전월세 상한제는 전월세 임대료 인상률을 직전 계약 대비 5% 이하로 제한하는 제도다. 현재 국토연구원이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선을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역전세 쓰나미로 당장 기존 세입자에게 돈을 내주지 못하는 집주인을 위해 금융당국은 보증금 반환용 대출에 한해 1년 정도 한시적으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완화할 방침이다.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도록 대출 규제를 더 완화한다는 것이다. 다만 집주인의 대출이 늘어날 경우 나중에 입주하는 세입자들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도 있는 만큼 대출 규제가 큰 폭으로 완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과도한 전세 대출이 깡통전세를 부추긴다는 의견도 있는 만큼 전세 대출에 DSR을 적용하는 방안도 나올 수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정상화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HUG는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 것을 대비해 전세반환금보증금 상품을 운용하고 있는데, 역전세 확산으로 부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집주인이 전세 계약 만료 후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해 HUG가 대신하여 돌려준 보증금(대위변제액)이 올 1월부터 5월까지 벌써 1조 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연간 총 대위변제액이 9,241억 원을 기록했는데 올해는 벌써 5개월 만에 작년 총금액을 넘어선 것이다. 나중에 집주인에 구상권을 청구해 금액을 돌려받는 구조지만 쉽게 회수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재정 악화가 우려된다. 또 현행법상 HUG는 자기자본의 60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보증 발급이 가능한데, 지난해 12월 기준 HUG의 보증 배수는 54.4배로 턱 밑까지 차오른 상태다. HUG의 보증 배수가 한도를 넘어서면 보증 보험 운용이 중단될 위험도 있다. 이에 자본금 확충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전세는 한국의 수많은 세입자들과 임대인들에게 수십 년간 혜택을 제공했던 제도다. 한국 임대차시장에서 전세를 없앤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들다. 전세 개선 방향이 논의되고 있는 만큼 취약점을 보완하는 방향의 제도 마련에 집중해야 한다.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개선안이 나오길 바라며 이를 통해 임대차시장에서 전세 제도가 위상을 되찾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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