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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 교양
슬기로운 직장생활

직장생활, 나와 가까운 사람과 잘 지내야 한다

직장인들은 흔히 고위직 간부와 인맥이 있으면 회사생활에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멀리 있는 고위 인사보다 직속 상사가 직장생활에 더욱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특히 부서 이동과 같은 민감한 부분에서는 가까운 사람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글. 김희영 작가(<2030 직장생활 지침서> 저자)

귄위는 없지만 권위주의적인 상사

30대 후반, 많은 나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권위 의식에 젖어 있던 차장이 있었다. 그가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는 상사는 부사장, 사장뿐이었고 그 외 나머지 선배, 동료, 후배 등 함께 일하는 사람을 무시하며 자기 기분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기 일쑤였다. 그는 평소에도 습관처럼 “아니 그게 아니고…….”, “전후 사정을 잘 모르셔서 그런가 본데…….” 라며 상대방의 말을 자르고 화제를 바꾸었다. 대화 상대의 직급을 가리지 않고 말하여 함께 참석하는 후배 직원이 그 상황을 민망하게 받아들일 때가 많았다.

그가 가진 권위 의식의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바로 회의를 잡을 때였다. 회의 시간은 그가 원하는 시간에, 회의 장소도 그의 자리와 가까운 회의실로 예약되어 있어야만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 참석자 중에는 상무, 전무 등 임원이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장 일정에 맞춰야 하니 회의를 직접 셋업하는 후배 입장에서는 곤란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회의 시간에 5분, 10분씩 지각하는 경우는 다반사였고, 아예 불참하여 파투를 내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사실 차장은 권위 의식만 있었지 실질적인 권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고과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휴가 결재나 비용처리를 할 수 있는 권한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기세등등하게 행동했던 것은 기획부서 파트장으로서 VIP 고객의 요구사항과 이슈를 모아 사장에게 직접 보고하는 업무를 했기 때문이다. 사장의 메일을 대필하는 경우도 많았고, 사장이 출장을 가게 되면 항상 수행비서1 처럼 함께 했다. 한마디로 그는 호랑이를 등에 업은 여우처럼 사장의 권위를 등에 업고 그 특권을 마구 휘둘렀다.

그가 불참하는 회의의 뒷수습과 감정이 상한 유관 부서 사람을 찾아가서 설명하고 부탁하는 일은 모두 나의 몫이 되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가슴 속에서 분노가 쌓이고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팀장을 찾아가서 개인면담을 요청했고, 지금 파트장과 함께 일하기 힘드니 파트를 바꿔달라고 말했다.

팀장은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고, 지금 당장은 어려우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하지만 몇 개월이 지나는 동안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팀장이 나에게 한 말은 그저 공치사였구나 싶어 부서를 옮길 다른 방법을 조용히 알아보고 있었다. 그즈음 조직개편으로 기존 팀장이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나고 새로운 분이 팀장으로 오게 되었다. 새 팀장이 부임한 지 1주일이 채 지나기도 전에 나를 호출하여 내가 원한다면 파트를 옮겨주겠다고 했다. 짐작건대 기존 팀장이 새로운 팀장에게 나의 면담 히스토리를 전달한 것 같았다. 그리고는 내가 파트장과의 사이가 껄끄러우니 본인이 직접 이야기를 하겠다고 했다.

몇 달 동안 지지부진하던 일이 순식간에 진행되어 뛸 듯이 기뻤다. 내가 옮기고자 하는 파트의 파트장도 이야기가 잘 마무리되었으니 원하는 시기에 언제든지 자리를 옮기면 된다고 했다. 팀장 주관 파트장 회의에서 나의 파트 이동에 대해 논의되었고 조직도도 새롭게 그려졌다는 것이다. 이제 남은 일은 자리 이사뿐이라고 생각했다.

1 수행비서: 높은 지위의 사람을 따라다니면서 그를 돕거나 신변을 보호하는 비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일이 진행되는 동안 현재의 파트장은 파트 옮기는 것에 대해 한마디도 말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팀장한테 인수인계는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말하는 태도가 그게 뭐냐, 사회생활 그렇게 하는 거 아니다, 파트장 건너뛰고 팀장 면담을 바로 하는 것은 사람 뒤통수치고 배신하는 것이다 등등 일장 훈계로 이어졌고 면담은 냉담하게 끝이 났다. 난 속으로 ‘이제 와서 뭐 어쩌겠어. 나는 이제 곧 옮길 몸인데…….’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듣고 넘겼다. 그리고 업무 연관성이 가장 높은 동료들에게 기존 업무를 이관했고 새로운 파트의 업무를 병행하면서 파트를 옮길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주간업무 시간, 모두 함께 모인 자리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내가 파트를 옮기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아니, 김 대리. 사회생활 얼마나 했는데 아직도 몰라? 자네가 몰라서 그렇지 결정된 건 하나도 없어. 아직 파트 못 옮겨.”라고 말하며 주간업무 회의를 끝냈다.

파트장은 팀장에게 아직 내가 인수인계를 끝내지 못하여 지금 파트에 남아서 일을 좀 더 해야 된다고 하면서 나를 옮기지 못하게 했다. 전후 사정이야 어떻든 파트장의 말 자체만 놓고 보면 논리에 맞는 말이어서 팀장도 더 말을 하지 못했다. 그 이후 파트장은 나에게 아무런 업무를 주지 않으면서 내가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소문을 내고 다녔다. 내부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은 파트장의 말을 그대로 믿었고, 나에 대한 나쁜 평판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때 깨달았다. 그 사람이 아무런 권력이 없어도 나의 고과를 매기거나 휴가를 쓸 때 결재권이 없어도 최소한 내가 다른 파트로 옮기고자 할 때 쉽게 옮기지 못하게 할 만큼의 힘은 있구나! 나에 대해 나쁜 평판은 만들어 낼 수 있구나!

정면 대치보다 효과적인 방법

결국 새로운 파트장이 기존 파트장에게 인력요청을 하는 절차를 다시 밟았고, 나 역시도 기존 파트장에게 죄송하다는 사과의 말을 하고 나서야 파트를 옮길 수 있었다. 파티션 한 칸 너머의 자리로 이동하는데 예정보다 한 달이나 더 걸린 셈이었다. 사실 이런 과정은 몇백 명 규모의 팀 단위 부서를 이동할 때나 필요한 것이지, 10명 이하 작은 조직에서는 불필요한 절차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런 해프닝을 통해 부서 이동 시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는 것, 그다지 높은 지위가 아니지만 나와 가까이 있는 상사는 생각보다 힘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실무자인 내가 팀장이나 사장과 친해질 수 있을까? 조직이 클수록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결론은 나의 바로 직속 상사와 잘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팀장과 면담을 통해 원하는 바를 얻어내도 나의 발목을 잡는 것도, 놓아주는 것도 바로 직속 상사이기 때문이다. 함께 일할 때도 중요하지만 헤어질 때 더 중요한 사람이 바로 직속 상사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은 직급이 가까운 사람과 척지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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