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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가 된다는

글_사진. 윤정원 기자(더팩트 경제부)

“어서와~ 고양이는 처음이지?”

지난해 10월 3일이었다. 한 손바닥 위에 올릴 수 있는 작은 생명체가 내 품으로 들어왔다.

새 가족을 들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6월께부터였다. 수년 전 키우던 강아지를 잃어버렸을 때처럼 짬이 날 때마다 동물보호시설 홈페이지를 들락날락하곤 했다. 과거 상실감에 젖어 다시는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해 왔지만 길을 잃었거나, 버려진 아이들에게 어느새 나도 모르게 눈길을 주고 있었다.

보호 중인 아이들은 여전히 많았다. 아니, 몇 년 새 훨씬 더 늘었다는 표현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밤새 한참을 들여다보고 다음날 다시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어제는 보이지 않던 아이들이 또 한가득 모여 슬픈 눈망울을 쏟아냈다. 강아지와 고양이들은 발견된 지역도, 품종도, 추정되는 나이도 제각각이었다. 목에 앙증맞은 이름표를 걸고 있는 토실토실한 아이가 있는 반면 피부질환으로 몸이 뒤덮이고 한쪽 다리를 저는 등 몸이 불편한 아이들도 다수 눈에 띄었다.

오전 8시 출근, 오후 6시 퇴근. 말이 그렇지 실상 취재기자의 시곗바늘은 째깍째깍 움직이지 않는다. 출근 시간보다 훨씬 일찍 나가는 경우도, 퇴근이 늦어지는 날도 다수다. 자의와 타의가 뒤섞이긴 하지만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술자리도 제법 있다. 새 가족을 들이기가 더욱 망설여졌던 이유다. 오롯하게 내가 보듬어야 할 가족을 외롭게 내버려 두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2019년 10월 3일 처음으로 만난 파란 눈의 ‘모피’. 집으로 데려올 당시 몸무게는 0.3kg 정도였다.
작은 몸집 때문에 어미로부터 버려진 '길냥이'

그렇게 몇 달을 고심하던 중,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새끼 고양이를 임시 보호 중이라는 글을 접하게 됐다. 내용인즉슨 길가에 버려진, 생후 사나흘 남짓 된 암컷 새끼를 데려와 돌보고 있으나 계속 키울 여건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동물병원에 데려가 보니 몸집이 너무 왜소해 어미로부터 버려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했다. 글쓴이는 어미젖을 먹지 못하고 버려진 새끼에게 3주일여간 이유식 젖병을 물려 왔고, 이제 막 불린 사료를 먹인다는 설명도 보탰다.

곧 임시 보호소로 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말에 가슴이 크게 울렁였다. 새끼 고양이가 동물보호시설 홈페이지에 얼굴을 비추기 이전에 데려와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페이스북 게시글에 살포시 “제가 키우겠습니다.”라는 댓글을 남겼다. 그리고 며칠 뒤인 10월 3일 개천절, 파란 눈의 새끼 고양이를 만나러 갔다. 이날이 후일 ‘모피’라는 이름을 갖게 된 새끼 고양이와 나의 ‘시작’이었다.

처음 만난 새끼 고양이는 손대기가 겁날 정도로 작았다. 몸무게는 0.3kg에 불과했다. 혹여나 으스러질까 작은 임시 상자 집에서 제대로 꺼내 보지도 못하고 고이 집으로 모셔왔다. 집에 돌아와 마루에 살며시 내려놨더니 새로운 환경이 낯선지 계속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곳저곳 옮겨 다녔다. 임시 보호자가 목에 달아준 방울이 고마웠다. 작은 몸집 탓에 방울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밟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뛰노는 새끼 고양이를 바라보며 한참 고심한 끝에 이름은 ‘모피’로 정하기로 했다. 쓸 일이 있겠냐마는 영어 이름은 자연스럽게 ‘밍크(Mink)’가 됐다.

‘고.알.못’ 초보 집사의 입양 전 준비물

모피를 맞이하기 전 기본적으로 준비해 뒀던 건 집과 화장실, 사료와 밥그릇, 스크래쳐, 장난감, 이동장 등이었다. 화장실에는 일반 모래 대신 먼지가 덜 날리는 두부 모래를 깔았다. 여기에 남자친구는 선물로 캣타워와 고양이 정수기라는 고급 옵션을 더해 줬다. 고양이 정수기는 분수대 모양의 음수대인데, 고양이가 흐르는 물을 좋아하는 데다 위생 측면에서도 낫기 때문에 집사들에게는 ‘필수템’으로 일컬어진다. 물론 세척을 수시로 해야 하며 필터도 주기적으로 교체해줘야 한다.

이어서 산 것은 온갖 종류의 빗이다. 고양이의 털 날림은 정말이지 상상을 초월한다. 자주 빗겨주지 않으면 집안은 금세 고양이 털 천국이 된다. 먼지 제거기인 일명 ‘돌돌이’도 필수다. 털 날림을 줄임과 동시에 고양이의 청결을 위해서는 목욕 샴푸도 필요하다. 고양이가 물을 극도로 혐오하고, 스스로 청결을 어느 정도 유지하기 때문에 목욕을 시키지 않는 집사들도 간혹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약 2주 간격으로 목욕시키는 것을 권장한다.

날카로운 발톱을 다듬기 위해서는 발톱깎기 또한 필수다. 귀 청소를 위한 면봉과 양치질 도구인 칫솔 혹은 양치 티슈 또한 구비해야 한다. 화장실 모래가 이곳저곳으로 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화장실 근처에 깔 전용 매트도 사면 유용하다. 고양이 간식인 일명 ‘츄르’는 고양이가 목욕 이후 스트레스를 받거나 교육할 때 칭찬용으로 사용하면 된다. 장난감의 일종인 고양이 터널을 사두면 고양이가 혼자 있어도 심심치 않은 시간을 보내곤 한다.

기본 예방접종부터 피부병 치료까지

모피와 처음 맞이한 주말, 집 근처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수의사 선생님으로부터 모피는 몸이 너무 작아 당장 예방접종을 실시하기는 어렵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보통 고양이의 경우 생후 1~2개월 때 1차 예방접종주사를 맞지만 성장 속도에 따라 접종일시는 약간씩 상이해진다. 2주일여 후 다시 병원에 방문해 첫 예방접종을 마쳤다. 가격은 회차당 평균 3만 5000원 수준. 이후 3주 간격으로 2차와 3차 기본 예방접종이 진행됐다.

1차 예방접종 당시에도 건강검진이 함께 이뤄졌는데 이날 모피는 ‘곰팡이성(진균성) 피부병’을 선고받고 말았다. 곰팡이성 피부병은 고양이들 사이에서는 흔한 질병으로,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동그랗게 털이 빠지고 딱지나 비듬이 나타나는 증상을 수반한다. 수의사 선생님은 “지니고 있던 피부병이 뒤늦게 발현됐을 수도 있고, 환경 변화 영향일 수도 있다.”고 설명하시며 바르는 연고와 먹는 약을 처방해 주셨다. 하지만 곰팡이가 번질 우려가 있어 모피는 어린 나이에 대머리가 되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한창 대머리일 무렵 모피의 눈 색깔은 이따금 바뀌기 시작했다. 고양이는 대부분 파란색의 눈을 갖고 태어나지만 약 3주에서 3개월까지 눈 색깔의 잦은 변화가 일어나고, 4개월 즈음에 색이 정착된다. 멜라닌 색소의 양에 따라 크게 갈색, 황색, 청색, 녹색 등 4가지로 눈 색깔이 나뉘는데, 멜라닌 색소가 많으면 황색, 적으면 녹색이 되는 게 일반적이다. 모피의 경우 황갈색, 이른바 호박색의 눈이 완성됐다.

곰팡이성(진균성) 피부병 전이를 막기 위해 모피는 머리털을 밀었다.
“내가 고자라니…” 중성화 수술은 선택 아닌 ‘필수’

모피가 생후 6개월을 앞뒀을 무렵 중성화 수술 날짜를 잡았다. 암컷이 수컷보다 수술비용이 비싼데, 암컷의 경우 수술비용이 20만 원대 후반부터 60만 원대 중반까지 이르는 등 병원마다 편차가 크다. 수컷은 10만 원대 중반부터 30만 원대 초반에 수술이 가능하다. 암컷은 전신마취를 하고 자궁을 들어내기 때문에 수술 시간은 마취가 깨는 시간까지 도합 1시간 30분가량 소요된다. 하루 정도 입원을 하기도 한다. 수컷은 고환만 제거하면 되므로 약 10분 내외로 수술이 끝난다.

수술 12시간 전부터는 금식이 필요하다. 수술한 후에는 일주일간 소독해 줘야 하고, 이때 고양이는 깔때기 모양의 목칼라(Collar)를 착용하고 있어야 한다. 목칼라로 인해 불편해 하는 모습에 절대 마음이 약해져서는 안 된다. 수술 부위를 핥으면 상처 회복이 상당히 더뎌진다. 일주일 후, 실밥을 풀어 주면 고자로의 변신 완료. 많은 고양이가 중성화 수술 이후 민첩함이 줄어 살이 찌곤 하는데, 다행히 모피는 수술 이후에도 홍길동처럼 날아다니며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중성화 수술에 대해서는 찬성과 반대 의견이 갈리기도 하는데, 집에서 고양이를 키울 때 중성화 수술은 필수다. 암컷과 수컷 모두 중성화가 필요하지만, 그 이유는 다르다. 암컷은 발정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상상 초월 수준인 데다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을 시 유선 관련 질환이 생기기 쉽다. 수컷은 발정기에 암컷을 끌어들이기 위해 영역 표시를 하는데, 이때 호르몬 영향으로 굉장히 고약한 냄새가 나게 된다. 또한 탈장, 고환, 전립선 등에 문제가 생길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중성화 수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흔히 강아지는 친화적이고, 고양이는 도도하다는 선입견을 품는다. 필자 역시 강아지를 키울 때는 그랬다. 그러나 1년여간 겪어 보니 고양이는 생각보다 훨씬 애교가 많고 청결하며, 배변 훈련이나 산책이 필요 없는 ‘똘똘이’다. 지금도 주인을 그리는 길냥이들이 수두룩한데, 혹시 집사의 길로 들어설 생각은 없으신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스트리트(Street) 출신 꼬질이’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가족’이 되었다.”

모피는 중성화 수술 이후 일주일 동안 깔때기 모양의
목칼라를 착용해야 했다. 당시 모피는 심통이 잔뜩 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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