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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PA LIFE
단소리 쓴소리

저널리즘도
변해야살아남는다

박민 기자(이데일리 편집국 건설부동산부)

“더 이상 게이트키퍼(gatekeeper)로서의 언론은 없다.” 4차 산업혁명시대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미디어 생태계가 디지털화되면서 언론사의 고유 권한이던 여론 형성, ‘아젠다 세팅(Agenda setting)’ 기능이 점차 약해지고 있다. 소위 메이저 언론사라 불리는 주요 신문이나 방송국에서 기사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 뉴스로 생산하지 않더라도 유튜브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Social Network Services)에서 얼마든지 뉴스 형태로 정보가 가공돼 유통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성 언론들은 온라인상에서 이슈가 되는 것들은 좇아 뒤늦게 기사화를 하거나 유명 오피니언이 자신의 SNS에서 언급한 내용을 그대로 기사로 싣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는 게 오늘날의 미디어 현실이다.

이 같은 현상은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의 급성장으로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가 출현하면서 더욱 가속화됐다. 과거에는 언론사들이 뉴스라는 ‘공공재’를 신문이나 방송 등의 ‘사유재’로 변형하면서 유통과 소비까지 완전히 장악했지만, 디지털 생태계 내에서는 뉴스가 사유재로 변형되는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다. 뉴스가 순수 공공재로 존재하면서 무한한 재 유통과 소비를 할 수 있어졌다. 이러한 뉴스 소비 환경의 변화로 언론은 수십 년간 독점해온 ‘뉴스 유통’ 장악권을 내려놓으면서 이와 함께 ‘아젠다 세팅’ 기능도 점차 잃고 있다.

특히 언론사들은 과거처럼 미디어 산업이라는 독자적인 공간에 존립하지 못하고, 디지털 생태계 안으로 들어가면서 경쟁구도도 바뀌었다. 경쟁사들이 종전보다 대폭 늘어나면서 수익도 크게 악화했다는 게 언론계 안팎의 목소리다. 예컨대 과거에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KBS와 MBC 등 ‘언론사 간 경쟁’이었다면 지금은 유튜브, 포털 등 ‘플랫폼 간 경쟁’으로 바뀐 상태다. 대부분 소비자는 직접 언론사의 홈페이지에 들어와 뉴스를 구독하기보다 대부분 포털 등에서 소비하다 보니 언론사는 단순히 최초 생산자 역할에만 그치는 실정이다. 이렇다 보니 역설적이게도 최초 뉴스 생산자보다 유통 플랫폼 사업자의 지위가 더 막강해지고, 수익을 더 내는 구조가 되고 있다.

언론사들은 자사 수익과 즉결되는 뉴스 소비자들을 한 명이라도 더 끌어모으기 위해 다량의 기사를 빨리 생산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다 보니 여러 부작용도 낳고 있다. 뉴스 소비가 대부분 모바일을 통해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상황에서 언론사들은 이를 반영한 속보성 기사에 매달리고, 기사의 포맷도 획일적인 스트레이트 뉴스만 쏟아지는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 많은 기사를 생산하기 위해 충분한 취재 과정을 거치지 않다보니 기사의 질 자체가 떨어지는 문제도 있다. 이는 다시 언론사 신뢰도를 떨어트리는 악순환에 빠지는 문제가 된다.

뉴스 소비 형태의 변화는 수용자들의 지위에도 큰 변혁을 가져왔다. 뉴스 소비자들은 이전처럼 단순한 소비에만 그치지 않고, 인상적이거나 공감을 하는 뉴스를 다시 개인 SNS, 커뮤니티 등의 온라인 공간에서 재유통한다. 이들은 뉴스 소비자인 동시에 뉴스 유통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특히 소비자들이 정보의 가공·편집을 통해 생산자의 역할도 수행하면서 언론의 기사 형식을 띤 ‘가짜 뉴스(페이크 뉴스)’를 만들어내 문제가 대두되는 실정이다. ‘가짜 뉴스’는 사실 확인을 전혀 거치지 않은 정보에서부터 특정 집단의 이익을 관철하려고 의도적으로 허위 조작한 정보 등을 마치 사실인 양 담고 있다. 이는 뉴스 소비자들에게 혼란을 주는 것은 물론 특정 계층 간 갈등을 일으키는 문제를 야기한다.
이에 따라 언론과 학계에서는 언론사와 기자의 역할 재정립을 강조하고 있다. 저널리즘의 공적 기능을 고려할 때 단순히 개별 언론사 및 경영진의 위기로만 인식하고 대응을 맡길 게 아니라, 전체 조직원들을 비롯해 언론 전반에 걸쳐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기자들에게는 독자들에게 어떤 정보가 믿을 수 있는 지, 무엇을 무시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진실확인자’를 비롯해 발생하는 사건을 맥락에 넣어서 정보를 지식으로 만드는 ‘의미부여자’로서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또 서로 충돌하는 글을 비교한 뒤 수용자에게 양질의 정보를 추천하는 ‘큐레이터’ 기능도 요구받고 있다. 뉴스가 과거에는 단순한 사실의 수집에 그쳤다면 앞으로는 종합과 해석까지 담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우선 진실확인자 역할은 이런 것이다. 각각 기사 안에서 독자들에게 왜 이 기사를 믿어야 하는가, ‘팩트체크’를 통해 진위를 판단해주는 게 필요하다. 또 기사의 생산 과정에 어떤 근거가 활용됐고 어떤 선택이 있었는지를 해당 기사 속에서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그래야 언론의 핵심인 신뢰성을 회복할 수 있다.

다음으로 사실의 수집으로부터 종합과 해석까지, 사건을 맥락에 넣어서 정보를 지식으로 만드는 ‘의미부여자’로서 뉴스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자로서 취재와 현장성 강화가 더욱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각각의 찬반 입장을 뉴스에 담되 단순한 양적 중립보다 질적 중립을 지키며 구체적인 해설을 전해야 한다. 각종 기업 및 관공서에서도 여러 플랫폼을 통해 보도자료를 게재하는 상황에서, 단순히 자료를 받아서 전달하는 기능은 이미 퇴색되고 있다.

수많은 콘텐츠를 목적에 따라 선별하고, 여기에 비평, 평가, 해석을 추가해 수용자에게 추천하는 ‘큐레이션 저널리즘’ 기능이 요구된다. 이는 검색이 아닌 추천이 중시되며, 언론사보다는 이용자가 편집권을 갖는 새로운 급변기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컴퓨팅 프로그램을 통해 자동으로 기사를 작성하는 형태의 ‘로봇 저널리즘’이 점차 확대되는 추세이다. 이미 일부 언론사들은 데이터를 수집해 뉴스를 생산할 수 있는 날씨, 주식, 스포츠, 재난 등의 분야에서 로봇을 활용한 뉴스를 생산하고 있다. 이러한 로봇 뉴스 영역은 더 확대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전망이다.

로봇 저널리즘의 가장 큰 장점은 빅데이터를 활용한 속도 경쟁의 우위에 있지만, 비판 및 감시의 기능이 없고 의미 없는 기사를 양산하는 등의 부작용이 있어 우려가 된다. 특히 로봇 알고리즘의 설계는 인간이 하므로 특정 정보 누락이나 과도한 개입에 따른 저널리즘 편향성 시비도 불거질 공산이 크다. 이에 로봇 생산 콘텐츠, 이용자 생산 콘텐츠와 전문 저널리스트가 생산하는 뉴스 콘텐츠 간 명확한 구분 짓기가 필요하다.

서비스 저널리즘에 대한 고심도 필요하다. 이는 디지털 시대 수용자의 지위가 급부상하면서 등장한 새로운 형태의 저널리즘이다. 뉴스 서비스가 구독의 니즈를 충족하는 데 집중하는 형태로 일상생활 관련한 사람들의 의사결정(decision making)을 돕는 행위를 뜻한다. 법률 관련, 질병 관련, 재테크 관련, 여행 관련 등 일상생활과 밀접한 정보에 스토리를 가미해 뉴스 콘텐츠 형식으로 제공하는 형식이다.

이미 뉴욕타임스는 이 같은 서비스 저널리즘을 새로운 수익 모델로 삼고 이를 확장해가고 있다. 예를 들어 뉴욕타임스의 ‘스마터 리빙’ 섹션은 저렴한 항공권을 구입하는 방법이나, 은퇴 자금을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지, 또는 장기간 여행 때 짐을 어떻게 싸야 하는지 등을 다루고 있다. 이는 단순히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원하는 것을 제공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독자의 실질적인 니즈를 충족하고 독자와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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