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그리고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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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수(감정평가사, 여행가, 수필가, 자유집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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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처럼 연일 내리던 비가 모처럼 개어 화창한 햇빛이 쏟아지던 9월 초 심의위원회 일로 협회를 찾은 박용수 감정평가사와 인터뷰를 가졌다. 업무로 인해 가끔 만남은 있었지만 직접적으로 마주한 자리에서 잔잔한 미소로 인터뷰에 응해주는 그의 모습에서 작지만 큰산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인천 출신인 그는 선친께서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분이라고 했다.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해방이 되자 고향인 함경남도 함흥으로 돌아왔으나 공산치하의 압정을 피해 월남하게 되었던 선친은 5.16 쿠데타가 일어나자 교원노조 간부라는 이유로 투옥된 뒤 직장을 잃었고 그 때부터 그의 가족은 모진 궁핍에 시달리게 되었다 한다.
중학교 시절 판자촌이 철거되어 천막에서 살기도 했던 그는 7.5평 짜리 시민아파트에 입주했을 때의 너무나 좋고 기쁘던 느낌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고등학교는 당연히 상고를 택했고, “당시에는 은행이 거의 유일한 괜찮은 직장이었으므로 거기에 들어가야만 우리집에 살길이 열린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열심히 공부했었다”는 그는 제일은행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청계천 헌책방을 뒤지면서 많은 독서를 한 그는,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국가는 본질적으로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생산수단이 없는 자는 결국 자유를 얻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였고, “돈이 없는 자가 가장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생산수단은 자격증”이라고 판단하여 공인감정사 시험공부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80년 11명을 뽑은 공인감정사 시험에 합격했고, 81년에는 6명을 뽑은 토지평가사 시험에 합격하여 10년 6개월 동안 다니던 은행을 퇴직하고, 82년에 영등포에서 금만섭 평가사, 임부택 평가사와 함께 합동사무소를 개업했었다. 당시에는 한강 남쪽으로는 그의 사무실 하나 뿐이었고, 서울 전체로도 공인감정사합동사무소는 11개뿐이었다고 하니 지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그는 은행에 다니면서 야간대학인 국제대학 경제학과를 나왔고, 다시 방송통신대학 행정학과에 1학년으로 들어가서 6년 만에 졸업했으며, 또 성균관대학교 경영대학원 부동산학과를 2년 반 동안 다녔으니, 상고를 나온 자기 친구들보다 두 배나 더 많이 학교를 다닌 셈이라며 웃었다.
하지만 그의 감정평가사로서의 인생은 3인, 7인, 15인 합동사무소와, 40인 법인을 거쳐 지금은 성남에서 개인사무소를 하는 이유를 ‘좀더 자유롭게 살기를 원해서’라고 한다.
그의 저서 ‘우리의 큰산’에 기재된 저자 약력에는 “세계 40여 나라와 국내의 명산 대찰을 두루 여행한 자유집필자 겸 여행가”라고 되어 있는데, 지금의 그는 감정평가사임과 동시에 자유집필자이고 또 여행가임에 틀림이 없어 보였다.
같은 책 서문에 “나는 오래 전 삶의 가장 큰 성취를 역사에 봉사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 나는 자유를 얻는 것이라 생각한다. 무지로부터의 자유, 물욕으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온갖 사회적 속박으로부터의 자유를 얻는 것이야말로 본래 자유롭게 태어난 인간의 가장 큰 성취라고 믿는다”고 되어 있다. 그는 “비록 처음의 뜻한 바는 이루지 못했지만, 자유를 얻고자 한 두번째 목표는 어느 정도 이룬 것 같다”며 자신의 삶에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그의 출판은 ‘우리의 큰산’ 이전에 개인사무소를 개업하면서 쓴 ‘부동산 33’이라는 얇은 책이 있다. 그 책이 몇 곳의 출판사에 보내졌고 그 중 ‘김영사’에서 출판하겠다는 연락이 와서 제대로 된 첫 번째 책을 내게 되었다고 한다. ‘시민을 위한 부동산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책은 몇 주 동안 일간지의 경제서적 베스트셀러 목록에도 올랐었다며 25,000여권이 팔린 그 책의 인세로 가족 모두가 해외 여행을 다녀왔다며 웃었다.
출판으로서의 두 번째 책인 ‘우리의 큰산’은 평소 산행 내용을 기록하던 습관 때문에 모아진 자료를 그대로 사장시키는 것보다는 책으로 내면 좋겠다는 생각에 출판하게 되었다며, 나이가 들면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을 갈무리해놓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편지 중에 “많은 훌륭한 분들의 유고가 후손이 거두지 못해 다락 속에서 좀 먹고 썩어간다”고 안타까워했던 내용이 있다며, 독자에게 조금의 유익함이라도 있다면 비록 필부에 불과한 자라도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을 책으로 펴내는 것은 매우 가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러한 믿음이 “어렸을 때 선친께서 늦은 밤까지 ‘인간성의 법칙론’이라는 저서를 집필하시던 모습이 자신의 뇌리에 크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우리의 큰산’이 1,000m 이상의 산만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1,000m 이하인 산을 대상으로 한 속편을 내년쯤 출판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밖에 인류의 유산이라 할만한 명저의 내용을 초록한 또 다른 책은 거의 완성되었고, 여행과 관련한 책도 집필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일본의 에도시대에는 지배계급이 신흥 상인계급과의 긴장관계를 해소하기 위해 일정한 구역을 정해 돈이 신분보다 앞서는 ‘부세’ 즉 ‘떠 있는 세상’을 만들어 돈 많은 상인들로 하여금 거기서 신분제의 질곡을 잊고 환락을 즐기게 했다”며, “이 세상은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성공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즉 “부세에서는 돈이 성공의 척도이고, 다른 세상은 출세가 성공의 척도이듯, 나는 ‘많은 것을 보고 배우는 것’을 성공의 척도로 삼았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임야가 70%이므로 산을 다니지 않은 사람은 우리나라를 보았다고 할 수 없다”며, 자신은 200개 산을 등정할 목표를 세웠는데 아직 140개정도 밖에 오르지 못했으니 앞으로도 열심히 산에 갈 계획이라고 했다. 또 그는 “골프를 치는 사람은 자신의 나이만큼의 타수를 기록하는 것을 꿈으로 생각한다는데, 나는 나이 수만큼의 나라를 구경하려고 한다”며, 그 목표는 충분히 달성할 것 같다고 했다. 또 자신이 목표한 것 중에는 하나가 더 있는데 그것은 “10권 이상의 책을 쓰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과 같은 그의 의지라면 세 번째 목표도 충분히 달성 가능할 것으로 믿는다.
정상(頂上)의 의미는 무엇인가? 시인 단테(Dante)는 산 위에서 세상을 굽어보는 것이 즐거워 자주 알프스를 올랐다한다. 또 한 산사람은 ‘산이 거기 있어 산에 오른다’는 말로 삶의 도전적 의미를 생각하게도 한다. 인간은 현재 더 오를 곳이 없어 산 정상을 무산소등정, 스키 할강 등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오르고 내리기를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가 만난 박용수 감정평가의 산 오르기는 달랐다. 서두에서 필한 바와 같이 작지만 큰 산 같다. 정상에 대한 의미를 단지 오르는 것이 아니라 오르는 중에 느끼는 모든 것을 피부로 마음으로 호흡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목적이 있어 떠나는 여정에 더 많은 것을 보고자 함은 자유다. 그런 자유에서 그의 미소가 나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며 수많은 독자와 또 앞으로 있을 후손들을 위해서 그의 작은 글들이 큰 산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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