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TRY

김명배문학상 대상 수상작

배종영 감정평가사(시인, 감정평가법인 대교 경기중앙지사)의
「2025년 제8회 김명배문학상」 대상 수상작을 소개해드립니다.

  • 글. 배종영 감정평가사(감정평가법인 대교 경기중앙지사)

  • 1

    달의 모서리

    굴러가는 것들도 때로는 멈춰 설 때가 있다
    그건 둥근 몸체에도 모서리가 생겼다는 뜻이다

    멀고 높다가도 때로는 가깝고 낮은 달,
    누군가 그 달의 모서리를 묻는다면
    초순과 하순쯤이 아니겠냐 싶다고 대답한다
    그때쯤 모서리의 뿔이 돋아나기 때문이다
    그러다 그 모서리가 닳아 둥글어지면
    다시 환하게 굴러가는 것이라고
    만월의 말투로 대답한다

    모서리들은 꺾어진 곳의 풍경을 갖고 있다
    그곳은 대체로 어둡거나 희미해서
    한밤 식탁 모서리를 더듬듯 더듬어야 한다
    구석은 모서리를 위해 꼭 필요한 모서리의 짝이다
    모서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돌면 나타날지도 모를 환한 바깥을 꿈꾸며
    날마다 어두운 구석을 더듬는지도 모른다

    달의 모서리에 몇 건의 경조사를 두고 있는 우리는
    어쩔 수 없는 모서리 밖이나 안쪽의
    반쪽 사람들이어서 늘 얼굴이 반쪽이다.
    그건 어느 한쪽을 잃었거나
    앓고 있다는 뜻이다

    한동안 동그랗게 굴러가다가도
    문득 제자리에 멈춰 서서
    달의 모서리를 살고 있는 한달살이들
    지난달은 빠듯했으나 이번 달은 그럭저럭 모서리를 벗어나
    환하게 굴러갈 것 같다

  • 2

    식물의 경첩

    식물에는 우리가 모르는 경첩이 달려 있다
    가령, 모란은 일생에 딱 한 번 열리고 닫힌다.
    문고리도 없이, 아무런 소리도 없이
    제 속마음 하나로 홑겹을 여닫는다.

    사람이 열릴 때 요란스러운 것이나
    수백 번 경첩을 여닫으며
    하늘을 나는 기러기들과는 다르다.

    딱 한 번 여닫는 것은
    하루로부터 배운 방식이겠지만
    배움이 짧아 아직 한달, 일년을
    알지 못한 까닭이기도 하다.
    열고 닫는 그사이를 갖가지 색깔로 살지만
    그 열린 꽃으로 셈하던 날들은 짧았다.
    오죽하면 열흘 붉은 꽃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봄에서 여름까지 열려 있던 나무들
    가을이 되면 녹스는 경첩들로 붉다.
    서걱서걱, 바람의 방식으로 배운
    스치는 소리를 내기도 하는

    수많은 종류의 경첩들이 세상엔 있지만
    철물점에서는 팔지 않는 것들이 훨씬 더 많다.

    스스로 경첩을 달고 태어나는 식물들
    봉숭아꽃 씨앗을 손바닥에 받아 흔들어 본다.
    아직 잠자고 있는 연분홍빛 경첩 소리가
    좔좔 들리는 것 같다.

배 종 영 감정평가사
  • 현 감정평가법인 대교 경기중앙지사 재직
  • 『시현실』 등단(2014)
  • 시집 『천 권의 책을 귀에 걸고』 (2022,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수혜), 『사유하는 팔꿈치』(2023)
  • 호미문학상(2021, 금상),
    천강문학상(2022, 대상),
    여수해양문학상(2023, 대상),
    성호문학상(2023, 본상),
    중부광역신문신춘문예(2023, 우수상),
    김명배문학상(2025, 대상) 외 다수 수상,
    아르코발간지원(2022),
    용인문화재단발간지원(2023),
    경기문화재단발간지원(2025),
    현 용인문협 부회장, 닻문학회 회장,
    『시현실』 작가회 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