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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똘한 한 채와 똘똘한 한 명

  • 글. 전민경 기자(파이낸셜뉴스 건설부동산부)

“외동이에요?”

며칠 전 느지막한 저녁, 2살이 된 아이의 어린이집 하원길 놀이터에서 만난 이웃집 아기 엄마에게 받은 질문이다. 그동안 “첫째예요?”라는 질문은 수도 없이 많이 받았지만, 아직 너무나 어린아이를 두고 외동이냐고 묻는 말은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 당황스러움에 “아, 네. 첫째예요”라며 이어갈 말을 망설이던 터에, 그 엄마의 다음 말을 듣고 나서야 질문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그는 “저흰 외동 확정이거든요. 얼마 전에 남편이랑 외동인 것으로 합의를 봤어요”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둘째 출산을 염두에 두고 있는 나로서도 마지막 말에는 크게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저도 워킹맘이라서요. 애 둘은 도저히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주변에서도 한 명만 낳아 잘 키우라고 하네요.”

“한 채만, 한 명만”

주택 시장에서 ‘똘똘한 한 채’ 선호 현상이 강화되고 있다면, 가정에서는 ‘똘똘한 한 명’이 트렌드로 자리를 잡은 듯하다. 똘똘한 한 채와 똘똘한 한 명은 탄생 배경부터 부작용까지 많은 부분이 닮아있다.

몇 년 전 정부가 다주택자에게 취득세, 양도세, 종합부동산세를 중과하자 1주택 비과세 혜택을 누리는 것이 ‘남는 장사’라는 인식이 생겼다. 그러자 똘똘한 한 채만 남기는 이들이 급증했고 핵심 지역에 위치한 그 ‘한 채’들의 값은 끝을 모른 채 치솟아 올랐다. 지역에 따라 주택 가격 격차는 날이 갈수록 벌어졌고,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집계한 18개 국가 중 대도시와 소도시 간의 집값 격차가 가장 큰 나라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한편, 다자녀가구의 삶이 금전적,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확산되자 부모들 사이에는 ‘안 낳아도 그만, 낳는다면 한 명’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자녀를 한 명만 낳아야 값비싼 사교육비와 양육비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특히 여럿이 아닌 한 명에게 교육비를 몰아주는 것이 이득이라며 한 명 출산을 권유하는 문화도 생겨났다. 사람들은 한 명의 교육에 집중 투자하기 시작했고, 연간 출생아 수는 매년 줄어드는데 총 사교육비는 늘어나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났다.

2015년 약 44만 명이었던 출생아 수가 지난해 24만 명으로 반 토막 나는 등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는 심각하다. 최근 출생아 수의 5년 추이만 살펴봐도 △ 2020년 27만 명 △ 2021년 26만 명 △ 2022년 25만 명 △ 2023년 23만 명 △ 2024년 24만 명으로 전반적 하락세다. 반면 초중고교생 사교육비는 △ 2020년 19조 4,000만 원 △ 2021년 23조 4,000만 원 △ 2022년 26조 원 △ 2023년 27조 1,000만 원 △ 2024년 29조 2,000만 원으로 증가해 30조 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똘똘한 한 명 만들기’가 입증되는 대목이다.

더 큰 문제는 교육 경쟁이 심화되며 사교육비가 오르고, 그로 인해 저출산 사회를 낳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을 중심으로 집값이 급등해 무주택자들이 ‘내 집 마련’의 꿈을 포기하고 있듯, 과도한 사교육비에 놀라 임신·출산을 포기했다는 부모들의 목소리는 이제 주변의 흔한 이야기가 됐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짙어지고 있다는 점도 주택 시장과 사교육 시장의 공통점이다.

‘4세 고시’부터 ‘초등의대반’까지

똘똘한 한 명을 만들기 위한 부모들의 투자 시점은 점차 앞당겨지고 있다. 정부가 올해 처음 공개한 영유아 사교육비는 연간 3조 원(시험 조사 추정치)을 넘어섰다. 최근 우리나라의 이른바 ‘7세 고시’, ‘4세 고시’가 국내는 물론 해외에까지 큰 충격을 줬다. 7세 고시는 이름난 영어·수학학원 레벨 테스트를, 4세 고시는 영어유치원(유아 대상 영어학원) 레벨 테스트를 대비하는 선행학습을 일컫는 말이다. 그다음 단계는 ‘초등의대반’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의과대학 입학을 목표로 초고속 선행 교육을 받는 시스템이다.

이처럼 과도한 사교육 현장은 깊게 들여다볼수록 처참하다. 4세 고시 준비반에서는 영작을 시키기 위해 15분, 20분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늘려가며 연필을 잡는 힘부터 길러준다고 한다. 아직 배변훈련도 마치지 않은 아이들이 기저귀를 차고 고시를 치른다는 말도 나온다. 온라인 맘카페에서는 “7세 고시 준비 중인데 이 수험제를 먹였더니 40분 동안 얌전히 앉아 수업에 집중해요.”와 같은 황당한 글도 자주 보인다. 영유아 영양제를 ‘수험제’라며 홍보하는 것이다.

얼마 전 학군지의 한 카페에서 대여섯 살로 보이는 아이들이 영어를 줄줄 외우더니 서로 시험 점수와 등수를 물어보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아직 자아가 형성되기도 전에 지나친 경쟁 사회에 내몰린 아이들은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을까.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에는 7세 고시를 심각한 아동학대로 규정해 달라는 진정이 접수되기도 했다.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등 강남 3구에 거주 중인 9세 이하 아동의 우울증과 불안장애 진단이 4년 새 3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아기 과도한 뇌 자극은 정상발달을 저해한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인 중에 ‘의사 자녀’ 혹은 ‘초엘리트 자녀’를 꿈꾸는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진학 상담을 하는 전문의가 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들 중 대부분은 영유아인 자녀들이 앞으로 다닐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까지 미리 설정해 놓는다. 심지어 자녀 유학을 계획 중인 부모는 몇 년도에 해외 어느 대학교를 입학해 어떤 학문을 전공할지도 일찍이 결정한다는 설명이다. 자녀들은 부모가 미리 짜 놓은 자신의 인생 로드맵을 따라가야 한다. 이런 환경에서 아이들의 의사와 의지가 과연 충분히 존중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많은’ 아이를 키울 준비

“영어유치원은 이제 필수에요. 잘 알아보고 있죠?”, “애기가 한 명이니 지금부터 사교육 준비해도 돼.”

먼 미래 같았던 자녀 교육의 길이 조만간 내 앞에도 펼쳐질 모양이다. 이 같은 말들을 이틀에 한 번꼴로 듣고 있으니 말이다. 많은 부모가 마찬가지겠지만 내 아이의 하루가 학원과 숙제로 가득 차지 않았으면 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맞벌이 부모는 ‘학원 뺑뺑이’를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조부모에게 매일 양육을 부탁드리기는 쉽지 않을뿐더러, 방과 후 하교·하원 도우미를 구하는 것보다는 학원 뺑뺑이가 그나마 돈과 노력이 덜 드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혀서다. 일과 양육을 병행하는 이들에게 사교육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것이다.

사교육비 상승은 학군지뿐만 아니라 학원이 적은 동네에서도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한 지인은 “학원 원장님이 어쩔 수 없이 또 학원비를 올린다고 하는데 근처에 다른 보낼 만한 학원이 마땅치 않다”고 했다. 사실상 독과점 형태다 보니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값을 치르고 있다. 사교육비가 계속 오른다면 출산과 다자녀 양육을 계획하는 부부와 예비부부들의 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주택 시장에서는 ‘똘똘한 한 채’ 선호 여파로 죽어가는 지방 부동산을 살려달라며 다주택자 세제를 완화해 달라는 아우성이 거세다. 정부도 지방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를 살릴 방안을 내놓는 등 대책을 모색하고 있다. 사교육과 사교육비 문제 역시 정부의 정책으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출산 장려의 핵심도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사례들은 극단적인 소수만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개그맨 박세미가 연기한 신도시 ‘서준맘’과 이수지가 연기한 대치동 ‘제이미맘’이 열풍적인 인기를 끈 것은 이미 우리 사회가 사교육에 목을 매고 있다는 방증이다. 아이들이 희망과 꿈으로 가득 찬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어른들의 가장 큰 역할이며, 더욱 많은 아이가 밝은 세상을 누비도록 하는 것은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