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味)학의 세계사

‘살롱부터 스타벅스까지’ 변치 않는 지성의 상징, 커피

싸구려 카페 한켠에서 <해리포터>가 태어났고, 세기의 작곡가 베토벤은 하루도 빠짐없이 원두 60개를 세어 커피를 내려 마셨다고 한다. 또 프랑스의 성직자이자 외교관인 탈레랑은 커피를 천사 같고 악마 같으며, 지옥처럼 뜨겁고 키스처럼 달콤하다고 했다. 세계의 거장들 삶에서 빼놓을 수 없던 커피, 대체 커피 안에는 무엇이 존재하는 걸까.

  • 글. 이주현 푸드 칼럼니스트

커피의 시작과 기나긴 항해

이제 우리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료 ‘커피’. 이 엄청난 존재가 처음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의외의 동물 덕분이다. 9세기경 에티오피아 고지대에서 목동이 기르던 염소들이 우연히 커피 열매를 먹게 되었다. 평소라면 염소들이 잠이 들 시간인데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을 지켜본 목동은 그 원인이 커피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 후 사람들은 커피의 각성 효과를 알게 됐다. 커피의 존재가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알려진 순간이었다.

이후 십자군 전쟁을 계기로 중세 유럽에 커피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커피가 이교도의 음료로 여겨지며 유럽인에게 괄시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도 알다시피 커피의 중독성은 엄청나다. 커피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은 이내 계속해서 커피를 찾게 됐다.

당시 커피는 일반인이 마시기에는 비싼 사치품이었다. 귀한 음식은 권력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오스만 제국은 유럽의 귀족들에게 접대의 의미로 커피를 제공했다. 커피가 외교적인 수단으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결국 네덜란드는 17세기 말 커피 묘목을 들여왔으며 자신들의 식민지인 인도네시아에서 커피 생산을 시작했다. 그 유명한 자바커피가 바로 여기에서 탄생했다.

이후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은 자신들의 식민지에 커피를 대량 재배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커피는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 등 전 세계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를 계기로 커피는 수백 년 동안 교역 붐을 일으키며 유구한 역사를 이어왔다.

커피 문화의 절정기, 살롱

프랑스의 ‘살롱’은 커피가 대중화되면서 나타난 문화다. 커피를 마시면서 당대 지식인들이 모여 철학과 문학 등을 논하던 모임이었다. 살롱은 17세기 초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던 르네상스기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문화다. 그러나 그 기원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기원전 4~5세기에 그리스 아테네의 귀족들 역시 이런 살롱 문화를 즐겼다. 당대 저명한 지식인들이 정치, 문화, 철학 등에 대해 토론을 나눴다. 그때 살롱에는 커피 대신에 포도주가 있었다.

이러한 고대 그리스 시대의 문화 모임은 유럽으로 퍼져나가 프랑스에서 절정을 맞는다. 프랑스 왕족과 귀족뿐 아니라 당대의 저명한 예술가들이 살롱 문화를 화려하게 수놓았다. 이들은 함께 모여 책을 읽고 토론을 즐겼으며, 새로 유입된 신문화를 접하며 문화 교류의 장을 열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루소, 디드로, 볼테르, 몽테스키외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지식인들은 모두 살롱에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빠질 수 없는 음료, 커피가 있었다.

커피의 각성 효과는 프랑스 혁명을 일으킨 요소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계몽사상가와 시민이 카페에 모여 커피를 마시며 잠을 잊은 채 지적인 교류를 열렬하게 나눴다. 이런 시간이 쌓이면서 서로 간의 굳건한 공감대를 형성하였고 이것이 프랑스의 구체제를 무너뜨리는 역할을 했다는 의견이다. 활발하게 진행되던 살롱 문화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후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대신 살롱을 개조한 ‘카페(Cafe)’가 생겨났다. 수많은 시인, 음악가, 철학자, 화가들은 여전히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예술적 영감을 교환했다.

카페를 넘어 제3의 공간으로 진화

이후로 커피는 산업혁명 시기를 맞아 산업화한 사회에 필수 음료로 자리 잡았다. 인류는 각성 효과로 잠을 줄이며 생활패턴을 바꾸고 있다. 이런 기능적인 역할뿐만 아니라 수만 가지의 다양한 커피 음료가 개발되면서 커피는 전 세계인의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료가 되었다. 특히 살롱 문화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커피 브랜드로 스타벅스를 빼놓을 수 없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커피 브랜드 중 하나인 스타벅스. 스타벅스의 CEO였던 ‘하워드 슐츠’는 스타벅스를 통해 사람들에게 ‘제3의 공간(third place)’을 제공한다는 철학을 세웠다. 이를 바탕으로 커피 문화를 확장했고 많은 손님이 스타벅스에서 편안하게 업무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카페 안에서 지적인 활동이 왕성하게 펼쳐진다. 이쯤 되면 스타벅스를 ‘현대식 살롱’이라고 표현해도 되지 않을까.

이처럼 카페는 과거부터 단순히 담소를 나누는 약속 장소가 아니었다. 살롱을 계승한 카페는 학문 발전에 이바지하였으며 지금도 지구상에 있는 카페 어딘가에서는 지식인들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회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카페와 지성은 오랜 시간 떼려야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앞으로 커피를 둘러싼 공간에서 또 어떤 지적인 활동이 펼쳐질지, 또 커피를 매개체로 어떤 발전과 도약이 이뤄질지 애정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