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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자에게 참~ 좋다는데 설명할 방법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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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민하 기자(조선비즈 증권부)

정년퇴직을 2~3년 앞둔 아버지는 최근 여기저기에서 투자 제의를 받는다. ‘안전 투자’라 쓰고 예·적금을 선호하시는 분이지만, 은퇴를 앞두고 이런저런 생각이 많으신지 부쩍 고민 상담이 느셨다. 부족한 점이 많지만 나름 금융투자업계를 취재하는 딸이 당신보단 많이 아실 것으로 생각하신 듯했다. 아버지처럼 은퇴를 곧 앞뒀거나, 은퇴한 투자자들이 원하는 투자 방식은 대체로 비슷하다. 변동성이 크거나 원금 손실 위험이 있는 투자보다는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낮더라도 꾸준히 현금을 가져다주는 자산을 선호한다. 그러면서도 소득이 없는 상태에서 더 크게 다가오는 세금 부담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다.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려 노력하는 K-장녀는 전문가들께 고견을 구했다. 그리고 가장 많이 들었던 게 바로 리츠(REITs·부동산 투자신탁)였다. 사실 리츠는 엄청 ‘신박한’ 재테크 방법은 아니다. 하지만 평생 월급쟁이로, 주식 계좌 하나 없이 살아온 아버지께는 너무도 낯선 영역이었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어떤 종목을 사야 하는지, 아니 애초에 어떤 방법으로 투자할 수 있는지부터 설명하려다 보니 한계가 느껴졌다. 리츠가 ‘노후 재테크로 참~ 좋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어떤지 아버지께 설명하는 딸의 입장에서 하나하나 되짚어봤다.
리츠는 쉽게 말해 여러 사람이 돈을 조금씩 모아서 큰 건물에 투자하고, 여기서 나오는 월세나 이익을 나눠 갖는 방법이다. 즉 혼자서는 큰 건물을 살 수 없어도, 리츠를 사면 적은 돈으로 건물에 투자할 수 있는 것이다. 주식처럼 쉽게 사고팔 수 있고, 정기적으로 배당금을 받을 수도 있다. 리츠는 투자자 수에 따라 49인 이하면 사모 리츠, 50인 이상이면 공모 리츠로 나뉜다. 공모 리츠는 한국거래소 상장 여부에 따라 상장 공모 리츠와 비상장 공모 리츠로 구분되는데, 통상 일반 투자자들은 상장 공모 리츠에 투자한다. 우리나라에는 5월 초 기준 24개의 리츠가 상장돼 있다.
리츠는 이름만 보고도 투자 자산을 알 수 있다. 오피스 리츠는 사무실, 리테일 리츠는 상가 등 소매 부동산을 기초자산으로 한다. 호텔 리츠는 호텔과 리조트 등 숙박 시설, 주거 리츠는 아파트·기숙사·고급 주택, 물류·산업 리츠는 창고·유통센터 등을 담고 있다. 투자 방법도 간단하다. 일반 주식과 동일하게 증권사를 통해 거래할 수 있다. 기존에 사용하는 증권 계좌를 활용해 매매하거나, 리츠 거래만을 위한 신규 계좌를 개설해도 된다. 상장 리츠는 주식 시장에 등록된 개별 주식이기에 시세를 확인하고 주문, 체결하는 방식으로 투자하면 된다.
리츠로 투자자가 수익을 내는 법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상장 리츠기 때문에 주식처럼 주가에 따른 매각 차익을 낼 수 있다. 하지만 리츠에 담긴 부동산 자산의 가격이 크게 오르내리지 않는 이상 리츠 주가도 움직이지 않아서 주식만큼의 재미를 보긴 힘들다. 두 번째 방법은 배당이다. 「부동산투자회사법」에 따르면 리츠 회사는 이익의 90% 이상을 배당해야 한다. 이 배당 수익이 바로 리츠의 핵심으로, 투자할 때 시가배당률(주당 배당금/주가)을 주목해야 한다.
이는 현재 주가와 비교해 리츠가 배당을 얼마나 했는지를 나타내는 수치다. 같은 리츠를 샀다면 같은 주당 배당금을 받지만, 수익률이 같진 않다. 언제 샀느냐에 따라 리츠를 산 가격이 달라져서다. 따라서 리츠의 주가가 저렴할 때 사야 시가배당률을 높일 수 있다. 이 점에서 리츠에 투자하면 상대적으로 은행 예금보다 높은 배당수익률을 노릴 수 있다. 2023년 기준 상장 리츠 배당수익률은 7.4%다. 만약 리츠에 5,000만 원을 투자해 분기마다 배당금이 입금되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면, 약 370만 원의 배당금을 매해 받을 수 있는 셈이다.

또 하나의 장점은 환금성이다. 주식 시장에 상장된 리츠는 주식처럼 사고팔 수 있어 아파트나 상가를 팔 때처럼 복잡한 절차 없이 원할 때 매도가 가능하다. 갑작스러운 병원비, 가족 경조사 등 긴급 상황에서 바로 꺼내쓸 수 있는 자산인 것이다. 이 지점이 부동산 펀드와의 차이점이다. 부동산 펀드는 주로 폐쇄형으로 운용되는데, 폐쇄형이란 투자하면 만기 때까지 돈을 뺄 수 없다는 뜻이다. 상장 공모 리츠는 이런 단점을 극복하고 환금성을 극대화한 게 특징이다. 물론 상장 부동산 펀드도 있지만, 리츠만큼 거래가 활발하지는 않다. 아울러 리츠는 부동산 펀드와 달리 만기가 없다. 이 점 덕분에 리츠 매니저는 오랜 기간 사이클을 보면서 투자할 수 있다. 쌀 때 사서 비쌀 때 팔 수 있는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금을 아낄 방법은 무엇일까. 리츠 매매 차익은 비과세, 배당 수익에 대한 세율은 15.4%다. 만약 리츠를 3년 이상 보유할 생각이 있다면 매수결제일부터 3년 만기일까지 증권사에 분리과세를 신청할 수 있다. 분리과세를 신청하면 투자액 5,000만 원 한도 내 3년간 받는 배당소득은 9.9%의 세율이 적용된다. 5.4%의 금융소득 과세가 아닌 소득세 9%와 지방세 0.9%를 합산한 9.9%의 세율을 적용받을 수 있는 셈이다. 즉 금융소득이 1년에 2,000만 원이 넘으면 다른 소득과 합산해 과세하는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이 되어 최고 45%의 세율을 적용받는데, 분리과세란 이 금융소득 2,000만 원에 포함하지 않게 된다. 상장 공모 리츠에 투자하면 더 낮은 세금을 낼 수 있는 데다 금융소득종합과세에 합산되지 않기에 세금 부담이 줄어드는 것이다.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에 리츠를 담으면 절세 효과는 극대화된다. 일반형 ISA는 200만 원, 서민형 ISA(직전년도 근로소득이 5,000만 원 이하)는 최대 400만 원의 이익이 과세되지 않는다. 초과분은 9.9%의 저율 분리과세가 적용된다. 이 역시 가입 의무 기간은 3년, 납입 한도는 연간 2,000만 원으로 5년 납입 기준 최대 총 1억 원이다. ISA는 계좌 하나에 예·적금, ETF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담을 수 있는 통합계좌다. 연간 일정 액수까지 이자·배당 수익에 비과세 혜택을 적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아울러 개인형 퇴직연금(IRP)으로 리츠를 담으면 연금 수령 시점까지 과세가 미뤄져 운용 기간 중 발생한 세금을 재투자할 수 있기도 하다. 55세 이후 연금을 받을 때 3.3~5.5%의 낮은 연금소득세만 내면 된다. IRP는 1년에 1,800만 원까지 입금할 수 있고, 이 중 900만 원까지 세액공제 혜택을 받는다.
최근 금리 인하기가 본격화되면서 리츠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투자자의 자금과 은행 등으로부터 대출을 받은 돈을 모아 부동산에 투자하는 리츠는 기준금리가 낮아지면 은행 대출 이자도 줄어든다. 즉 리츠를 운용하면서 드는 부대비용(이자)이 줄어드니 배당금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어 리츠가 강세를 보이는 것이다. 최근 LG그룹, 현대차그룹 등 대기업을 비롯해 중견기업들도 앞다퉈 리츠를 설립하고 있다. 유휴 자산을 유동화시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부동산을 매각하는 대신 리츠에 편입시키면 주주 자리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사실 대기업들과 리츠 설립을 논의하는 자본시장 관계자들은 대기업이 리츠에 넘기려고 하는 부동산이 ‘쭉정이 자산’인 경우가 많다고 털어놓는다. 몇 차례 매각하려다가 실패한 부동산을 리츠에 편입하려는 곳도 있다. 리츠 AMC(자산관리회사)가 지주회사 밑에 있다 보니 지주 경영진 눈치를 보느라 부동산 자산 운용 전문성을 발휘하기도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때문에 실제로 지난해 주요 대기업 리츠가 잇달아 대규모 유상증자에 나서면서 일부 리츠 주가는 급락하기도 했다. 그룹 이익을 위해 시세보다 비싸게 빌딩 매입가를 책정한 것 아니냐는 투자자들의 반발도 빗발쳤다. 논란이 커지자 올해 몇몇 대기업 리츠는 유상증자 대신 회사채 발행을 택하는 등 자금조달 방법을 다양화하고 있다.

내가 고른 리츠가 시장에서 퇴출당할 수도 있다. 모 리츠는 회장의 횡령 사고가 발생한 데 이어 2024년 사업보고서 감사 의견 거절을 받으면서 상장폐지 절차를 밟고 있다. 결국 이 리츠는 경영 정상화와 거래 재개를 위해 대주주 교체에 나서고 있다. 또 다른 리츠는 상장 유지를 위한 조건인 최소 매출액 50억 원을 충족하지 못하면서 지난해 초부터 거래가 정지됐다. 하위권에 있는 리츠만의 문제도 아니다. 한 리츠 상위사가 운용 중인 사업장에서도 금융 사고가 발생했다. 리츠가 회수해서 투자자들에게 배당해야 할 돈을 자산관리회사가 횡령해 업계 신뢰도를 훼손한 사례다.
그렇다면 어떤 리츠를 골라야 할까. 리츠에 투자하기 전엔 각 종목이 담고 있는 자산이 무엇인지, 그동안 배당 이력은 어떠한지 등을 살펴봐야 한다. 전문가들은 공실률이 낮은 자산을 편입하고 있는 리츠를 고르라고 추천했다. 그룹 계열사들이 임차하고 있는 건물에 투자하는 리츠가 대표적이다. 이들 리츠는 임대율이 보통 98~100%에 달한다. 개인 스타일에 맞는 투자 자산을 가진 리츠를 고르는 것도 방법이다. 오피스를 주요 기초자산으로 하는 리츠는 변동성이 적고 배당이 꾸준하다. 리테일이나 호텔 리츠는 배당률이 높지만 경기에 민감하고, 물류센터나 데이터센터 리츠는 미래 수요 증가가 예상돼 장기 투자에 적합하다.
물론 개인투자자가 모든 리츠의 구조와 특징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이럴 땐 개별 리츠에 직접 투자하지 않고 상장지수펀드(ETF)를 통해 여러 리츠에 간접 투자하는 방식도 있다. 이 경우 위험이 분산되는 효과가 있고, 어떤 리츠가 좋을지 고민 없이 ETF 하나로 전체 시장 흐름을 따라갈 수 있어 편하다. 다만 ETF는 분기 배당으로 고정된 경우가 많고, 운용 보수도 일부 발생한다. 물론 최근엔 매달 연금을 받는 것처럼 배당금을 받을 수 있는 월 배당 리츠 ETF로 바뀜이 잇달아 일어나고 있기도 하다.
리츠 역시 주식이나 부동산과 마찬가지로 원금 손실 위험은 있다. 금리가 상승하면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리츠 수익률도 크게 떨어질 수 있다. 또 테마주(株)처럼 급격한 주가 상승을 기대하긴 어렵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노후 준비에 적합한 투자 자산으로 리츠를 빼먹지 않고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음을 다시 한번 알게 됐다. ‘야수의 심장’은 아니지만 예·적금보다는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중위험·중수익 투자자들은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한 리츠. 오늘 저녁에 아버지께 전화 한 통 드려야겠다. 아, 물론 투자의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