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감정평가사 수기 공모전」

「제5회 감정평가사 수기 공모전」
수상작을 소개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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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회 감정평가사 수기 공모전」 최우수상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 글. 정은경 감정평가사(케이원감정평가사사무소)

    2024년은 제가 본연의 감정평가 업무를 시작하는 개인적인 변화가 있었던 해이기도, 오랫동안 좋아했던 작가 폴 오스터가 작고했던 해이기도 합니다. 감정평가사 시험에 합격한 지 18년이 지났지만 이제서야 진짜 감정평가사로 살게 된 것이지요. 누군가 – 신입은 아닌 모호한 어쨌든, 감정평가사임이 자명한 - 저에게 감정평가란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와 같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마치 소설가 폴 오스터가 소설을 통해 낯선 사람과 말을 거는 것처럼요.

    대작가 폴 오스터는 무명인인 양 낯선 사람에게 슬쩍 말을 시켜 글감의 소재를 찾곤 했다는데요. (장난꾸러기 기질이 다분하죠) 그의 산문집에서는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비법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고 이야기를 도출해 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아무리 낯선 사람이라도 날씨 이야기를 한다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그다음 이야기는 술술 이어진다. 빈자든 아이든 공유하는 하늘은 모두 같기 때문이다” (폴 오스터,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저는 MBTI가 ENTJ와 INTJ로 시시각각 변하는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요즘은 INTJ 성향을 고수하는 것 같습니다. 감정평가를 하기 위해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일이 설렘보다는 초조함이 앞서기 때문이지요.

    감정평가는 수치와 숫자로 재단할 수 없는 많은 정보가 부동산을 보유하고 살고 있는 사람의 경험치로 축적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등기부 등본이나 건축물대장에 표기되지 않은 리모델링 비용, 발코니 확장 등의 정보, 대지로 형질 변경을 하기 위해 소요된 비용, 최근 부동산 매물을 보러온 사람이 있었는지, 얼마면 잘 팔릴 수 있는 가격인지 등등. 낯선 사람에게 말을 얼마나 잘 거느냐에 따라 감정평가사의 실력이 차이가 난다고 하는 말이 과언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대부분을 내향형으로 살아가는 저에게 폴 오스터의 충고는 동아줄 같을 때가 많았습니다. 날씨 이야기 강박이라고 할까요? 오늘은 참 덥습니다. 비가 오는 날 찾아뵙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날씨가 흐려도 현장 조사하기에는 참 좋네요. 추운 날 고생이 많으십니다. 날씨를 주제로 한 인사말은 낯선 사람과 만날 때 초조함을 걷어낼 수 있는 나름 괜찮은 주문이었던 셈이지요.

    감정평가사로서 일한 지 어느덧 이십 년이 되어 갑니다. 왜 감정평가사가 되었냐고 묻는다면, 제 대답은 사람과 가치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합니다. 처음 업무를 시작할 때는 서류와 숫자 속에서 급급하기 여지없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 나서 보니 감정평가사의 일은 사람들의 삶 한복판에서 웃음과 눈물을 함께하며 가치를 찾아내는 일이었습니다.

    신입 감정평가사로서 맞이한 첫 현장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는 해프닝투성이였습니다. 무더운 여름날, 지도 한 장을 들고 시골 마을의 토지 감정평가를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내비게이션에 의존해 비포장 좁은 길로 접어들었다가 그만 논두렁에 바퀴가 빠질 뻔했고, 겨우 빠져나와 도착한 곳에서는 비슷한 지번 탓에 엉뚱한 땅을 한참 살펴보고 말았습니다. 한동안 사진을 찍고 메모를 하는데, 어디선가 “거기서 뭐 하는 거예요?”라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턱수염이 덥수룩한 농부 한 분이 잔뜩 경계하는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고 있었죠.

    알고 보니 제가 서 있던 곳은 의뢰받은 토지와 한 필지 차이인 옆집 농부의 밭이었습니다. 순간 얼굴이 화끈거려 얼어붙은 저를 보며, 농부는 처음엔 수상쩍다는 듯 이것저것 캐물었습니다. 저는 식은땀을 흘리며 카메라와 서류 가방을 들고 얼른 사과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처음 와 보는 동네라 땅을 잘못 찾았네요. 감정평가사입니다. 토지를 감정평가하고 있었는데 지번을 혼동했나 봅니다.”
    제 설명을 들은 농부는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경계심을 풀었습니다. 다행히도 큰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허허, 나도 처음 보는 젊은 사람이 우리 밭에서 서성대니 도둑인 줄 알았지!” 하고는 크게 웃으셨습니다.

    그렇게 무안한 해프닝은 웃음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농부 아저씨는 직접 본인 밭이 아닌 의뢰받은 밭을 가리키며 “저쪽이 말하는 그 땅일 게야”라며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덕분에 진짜 대상 토지를 찾을 수 있었지요. 헤어지기 전, 그분은 땀에 젖은 제 모습을 힐끔 보시더니 마당에 가서 시원한 물을 한 바가지 퍼 주셨습니다. 예상치 못한 환대에 당황하면서도 감사한 마음으로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이 첫 현장 경험을 통해 지도를 읽는 법뿐 아니라 현장에서 겸손하게 여쭙는 지혜도 배웠습니다. 신입으로서 잔뜩 주눅 들었던 저에게 농부의 너털웃음과 한 바가지 물은 큰 위로이자 배움이 되었습니다. 그날 저녁 사무실로 돌아와 선배에게 이 이야기를 털어 놓았더니, 선배는 박장대소하며 “누구나 처음엔 실수하는 법이야. 다음부터는 마을 이장님이나 주민들께 먼저 물어보는 것도 좋아” 라는 조언을 건넸습니다. 저는 웃음 속에 귀한 충고를 새기며, 실수도 자산으로 삼아 성장해 나가기로 다짐했습니다.

    몇 년 뒤 감정평가사로서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무렵, 도시 재개발 지역의 주택 감정평가를 맡게 되었습니다. 개발로 오래된 주택들이 철거될 예정이라 주민들에게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했지요. 현장에 도착하니 골목마다 이사 준비로 분주했고, 오랜 세월 켜켜이 쌓인 흔적들로 가득한 집들이 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중 한 허름하지만 정감 어린 작은 집에서 백발의 할머니가 저를 맞이해 주셨습니다. 할머니는 처음엔 감정평가사라 소개한 저를 경계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셨습니다. 아마도 자신의 삶이 담긴 집이 헐값으로 감정평가될까 걱정이 많으셨겠지요.

    저는 최대한 차분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인사드린 뒤, 집 안 구석 구석을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방 한편에는 오래된 흑백 가족사진과 손때 묻은 가구들이 놓여 있었고, 벽에는 손주들이 그린 크레용 그림들이 붙어 있었습니다. 창틀엔 세월의 먼지가 앉아 있었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정원은 정갈하게 가꿔져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제 뒤를 천천히 따라다니며 때때로 설명을 덧붙이셨습니다.
    “저기 액자 속 아기가 우리 큰손주여. 이 방에서 첫걸음마도 뗐지. 마루에 난 저 자국 보이나? 30년 전에 지진 났을 때 금 간 건데 그냥 뒀어. 추억이라···”
    할머니의 이야기는 집 구석구석에 깃든 추억과 정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감정평가를 위해 체크리스트를 따라 집의 구조와 상태를 살피고 있었지만, 마음 한켠으로는 그 추억의 무게를 느끼며 숙연해졌습니다.

    집을 모두 둘러본 후, 저는 할머니께 감사 인사를 드리며 조심스레 말씀드렸습니다.
    “말씀해주신 사연들을 들으니 이 집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것 같습니다. 저도 최대한 할머님과 가족의 추억이 존중받을 수 있도록 공정하게 감정평가해 보겠습니다.”
    할머니는 잠시 놀란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시더니, 이내 눈시울을 붉히며 제 손을 꼭 잡았습니다. “고맙네, 젊은 양반. 내 평생을 바친 집이라 마음이 쓰렸는데, 이렇게 알아줘서···”
    그 순간, 감정평가사라는 일의 무게와 의의를 다시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건물과 땅값을 계산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삶의 이야기를 함께 마주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지요.

    요즘 부동산 시장은 한마디로 ‘출렁이는 바다’ 같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거래가 활발하고 가격이 치솟던 지역이었는데, 이제는 썰물 빠지듯 빠르게 침체된 곳이 많아졌습니다. 금리 인상, 경기 침체, 인구 감소 등… 침체요인은 다양하지만, 현장을 다니다 보면 결국 시장의 변화는 사람들의 표정 속에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처음 감정평가사가 되었을 때만 해도, 부동산 가격이 오르기만 하는 줄 알았습니다. 현장조사를 갈 때마다 “요새 우리 동네도 값 올랐지?” 하며 으쓱하던 주인분들이 대부분이었지요.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주택 담보 대출 이자에 허덕이며 “이거 매도하면 손해 보나요?”를 물어보는 사람들, 장기간 미분양으로 고민하는 소형 건설사 사장님들, 재개발을 기다리다 지친 노부부까지… 부동산은 여전히 ‘돈’이지만, 그 ‘돈’을 둘러싼 표정은 무겁고 복잡해졌습니다.

    부동산 시장 상황이 바뀌어도, 제 감정평가 업무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사람과 마주하는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부동산은 숫자가 아니라 사람들의 꿈과 불안, 희망이 얽혀 있는 현실입니다. 저는 감정평가사로서 늘 공정하고 냉정해야 하지만, 동시에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변하는 시장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저는 오늘도 현장을 누빕니다. 데이터를 분석하고 수치를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장에 선 순간마다 저는 늘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이 숫자 속에 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보고 있는가?”

    앞으로도 저는 끊임없이 배워나가며, 부동산 시장의 변화 속에서도 사람과 가치를 잊지 않는 감정평가사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요즘처럼 변동성이 큰 시대일수록 한 장의 감정평가서가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시작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잊지 않으려 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조심스레, 그러나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의 가치를 기록해 나갑니다.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일을 시작으로 말이지요. 오늘 날씨는?
    맑음입니다!

    감정평가사로서
    저는 늘 공정하고 냉정해야 하지만,
    동시에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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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회 감정평가사 수기 공모전」 우수상

    짜장면 한 그릇

    • 글. 임재민 감정평가사(효성감정평가법인 본사)

    어떤 공간의 가치를 평가한다는 것은 단순히 숫자를 다루는 일이 아니다. 한때 그곳에 머물렀거나 또 현재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감정평가사라는 직업을 갖게 된 후, 그동안 내가 알지 못했던 우리 주변의 삶들에 대해 가까이 다가가고 이해하는 일련의 경험들은 내게 많은 생각을 가지게 한다.

    얼마 전, 인천광역시에 있는 아파트 단지 내 상가 현장을 찾게 되었다. 필요한 공부서류를 챙겨 카메라를 들고 그곳에 갔을 때 상가는 생각보다 조용했고, 곳곳에 빈 점포가 눈에 띄었다. 그런 가운데 유독 오래된 간판이 시선을 끄는 작은 열쇠집 하나가 문을 열어놓고 있었다. 살짝 문을 열고 사장님께 인사를 드린 뒤, 방문 목적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고서 현장조사를 진행했다.

    열쇠 가게를 운영하는 분들은 부모님 또래의 다소 연세가 지긋하신 부부였다. 마치 아는 사람이라도 만난 듯 환하게 웃으며 들어오라 반기는 것과는 반대로, 가게 안 분위기는 어딘가 쓸쓸함이 묻어났다. 남자 사장님과 함께 건물 내부를 돌아보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최첨단 현대 기술의 도약으로 사회 전반에 자동화되지 않은 시스템이 드문 게 사실이다. 열쇠 업계에도 디지털 도어락이 보편화되면서 장사가 어려워졌고, 월세를 내기조차 빠듯하다며 사장님은 한숨을 쉬었다. 짐작은 했지만 정작 임차인의 현주소를 실감하고 보니 그렇게 마음이 무거울 수가 없었다.

    현장조사를 마친 후 인사를 드리고 돌아서는데 사장님이 등에 대고 물었다.
    “젊은이, 혹시 점심 먹었어요?”
    순간 멈칫했다. 그분의 마음이 읽혔기 때문이다. 바쁜 일정 속에서 점심은 편의점에서 간단히 때우는 것이 일상인지라 그날도 그럴 참이었다. 잠시 갈등하다가 얼른 대답했다.
    “아, 지금 가면서 먹으려고요.”
    그때 사장님이 얼른 내 팔을 잡아챘다.
    “아유 밥은 먹고 해야지! 시간도 늦었는데…. 짜장면 하나 시켜줄게요. 후딱 먹고 가요.”
    말씀을 마치기도 전에 중국집에 전화를 걸어서는 열쇠집에 짜장면 한 그릇 갖다 달라고 주문하는 바람에 연거푸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다. 줄다리기는 이미 끝났다는 듯 사장님이 나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 모습이 어째 아들을 보는 아버지 같다고 느껴졌다.

    결국, 나는 짜장면 한 그릇을 받아 들었다. 작고 따뜻한 가게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짜장면을 먹는데 면을 입에 넣기도 전에 울컥함이 먼저 올라와 잠시 숨을 골라야 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애써 누군가를 챙기려는 그 마음들이 이 사회를 보듬고 있구나, 누군가는 그렇게 사는구나 싶어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분들은 어쩌면 사람이 그리웠을까. 텅 빈 상가를 지키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일이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작은 온정을 베풀 기회마저 박탈당한 채 외로이 걸어가는 느지막한 인생에 한 젊은이의 등장은 생기 그 자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릇 속의 면 가락보다 더 많은 상념으로 인해 나는 짜장면 맛을 제대로 느낄 수가 없었다.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일어서는데 사장님이 악수를 청했다.
    “우리 그래도 계속 열심히 살아봅시다!”
    사장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는 이상한 힘으로 내게 전해져왔다. 나에게 하는 말인 동시에 자기 자신을 다잡는 외침이었다. 그 말은 아버지 세대가 아들 세대에게 하는 당부이며, 이 세상 모든 이에게 고하는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현실이 아무리 고달플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이겨내려는 자세는 어른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덕목이요 지침이 아닐 것인가.

    지금 우리나라가 처한 경제적 불황은 심각한 수준에 와 있다. 모두가 힘들다고 아우성친다.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위기의식에 사로잡혀 몸을 사린다. 그럴지언정,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는 말 한마디는 천금보다 귀하다. 상가를 나오면서 속으로 무수히 되뇌었다.
    ‘아, 열심히 살아야지.’

    그날 이후 현장을 다닐 때면 조금 더 천천히 주변을 바라보게 되었다. 단순히 토지·건물 등의 면적, 구조, 형태에 따른 경제적 가치를 재는 일에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사람의 이야기’를 보고 들으려 노력하는 내가 보였다. 그것이 내가 하는 일에 의미를 주고 힘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그 속에서 내 삶이 조금씩 넓고 깊어져 갈 것을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나 사물이나 희로애락의 과정을 거친다. 한때의 영화도 언젠가는 소멸의 길을 걷게 된다. 사람이 나이 들어가듯 땅도, 건물도, 또 그들만의 서사도 낡고 희미해질 것이다. 세상 모든 것들의 최종 목적이 아름답게 소멸해가는 일이라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인생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살아내야 한다.

    갓 이 일을 시작한 초보 때는 오직 눈에 들어오는 것만 바라보았다. 경직된 자세로 정해진 물건에만 집중해서 숫자에 연연했다. 하루하루 경험치가 쌓여가면서 비로소 사람이 보이고, 사람 주위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가치의 우선순위에 사람을 두면 더 많은 것들이 시야에 들어온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내가 하는 일이 결단코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빈 점포는 점포대로 말을 하고, 남은 자는 남은 자대로 지난날들을 부여안는다. 그런 숱한 현장을 돌아다니며 보고, 느끼고, 깨닫게 되는 다양한 감정들은 나의 내면에 켜켜이 쌓여 좋은 인간이 되는 밑거름으로 작용할 것이 틀림없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세상을 배우고, 마음을 바로 세우는 이 일을 만난 것이 숙명이라면 참으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열쇠 가게 노부부는 여전히 덩그러니 남아 오지도 않는 손님을 하염없이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또 누군가 찾아오면 붙들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할 것이다. 흘러간 시간을 대신해서, 사라져버린 사람들을 대신해서 그리고 아직은 자신을 품어주는 썰렁한 건물을 대신해서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고 싶을 것이다. 남은 삶이 여전히 그들 앞에 있으니까.

    세상 모든 일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순리대로 사는 일, 인간미를 잃어버리지 않는 일, 타인들과 아름다운 관계를 이루는 이런 것들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의무요, 숙제다. 제아무리 위대한 가치를 부여받아도 사람을 외면해서는 성립되는 것이 없다. 사람이 있는 곳이라야 땅이 숨 쉬고 건물이 움직인다.

    감정평가란, 금액이라는 경제적 가치를 정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마음의 가치를 알아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가치는, 때로는 짜장면 한 그릇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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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회 감정평가사 수기 공모전」 우수상

    국민과 함께한 미지급용지 감정평가 사례 :
    사회적 책임을 실천한 감정평가사의 이야기

    • 글. 오현지 감정평가사(태평양감정평가법인 대구경북지사)

    2025년 봄, 감정평가사로서의 두 번째 해를 맞이한 나는 한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미지급용지에 대한 감정평가 의뢰를 받았다. 이 사건은 단순한 업무를 넘어 감정평가사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깊이 체감하게 해 준 특별한 경험이었다. 감정평가 대상은 수십 년간 도로로 이용되어 온 토지로, 당시 소유자는 한평생 자신의 것이었던 땅을 나라와 이웃을 위해 도로로 내어주었지만, 오랜 기간 보상을 받지 못한 채 억울함을 품고 살아오신 분이었다.

    처음 현장을 방문했을 때, 그는 긴 한숨과 함께 말을 꺼냈다.
    “이 땅은 아버지 때부터 우리 가족이 관리해 온 땅입니다. 어느 날 도로가 나더니 그냥 그렇게 사용되고 있어요. 나라에서 쓰는 거니까 그러려니 하고 살았는데, 지금 와서까지 보상받지 못했다는 게 너무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감정평가사로서 내 역할이 단순한 수치 계산을 넘어서 사람의 삶과 권리를 다룬다는 점을 일깨워주었다.

    나는 본건 토지의 공공 사용 연혁을 규명하기 위해 국토지리정보원의 1954년 항공사진부터 열람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토지의 현재 상태만을 보고 판단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주변 토지들의 토지이동 사유와 지목변경 이력, 과거의 지적도와 항공사진을 비교하며 토지 이용의 흐름을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시청 도시계획과, 도로과, 지적과 등에 수차례 전화해 협조를 요청하였고, 마침내 이 토지가 1970년대 중반 무렵부터 도로로 사용되어 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연혁을 추정하고 자료를 하나씩 모아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고된 일이었다. 과거 항공사진의 정확도 한계와 지적도 간 불일치, 행정자료의 누락 등으로 판단을 내리는 데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감정평가사로서 책임감과 전문성이 더욱 절실히 요구되었고, 나는 모든 판단의 근거를 명확히 문서화하고,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신뢰할 수 있는 결과를 도출하고자 노력했다.

    소유자에게 자료를 보여드리며,
    “선생님의 토지는 오랜 기간 공공의 도로로 이용되어 온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감정평가는 그간의 사용 내역과 가치에 대해 보다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감정평가하여, 보상이 적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절차입니다. 혹시라도 법적 보상을 받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부당이득반환청구와 같은 소송을 통해 과거 사용에 대한 사용료 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습니다. 감정평가사로서 저는 단순히 감정평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정보를 국민께 안내해 드리는 역할도 함께 수행하고 있습니다.”
    라고 설명해 드렸다. 그는 처음엔 반신반의했지만, 점차 내 설명에 귀를 기울이며 얼굴에 안도와 신뢰가 비쳤다.

    이 사례를 계기로 나는 감정평가사의 전문성과 사회적 책임이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확신하게 되었다. 감정평가서를 통해 단순히 금전적 가치를 산정하는 것을 넘어, 국민의 재산권이 어떻게 침해될 수 있는지를 객관적 수치로 드러내고, 그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되찾는 기반을 마련해주는 것 또한 우리의 몫임을 실감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담당 공무원과의 협업도 매우 중요했다. 담당 부서에서는 과거의 기록을 확인하며 행정적인 판단을 내려야 했기에, 내가 제출한 감정평가서의 구조와 설명 방식은 실무적인 신뢰를 쌓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감정평가사와 행정기관이 서로의 영역을 이해하고 협력한다면, 보다 효율적이고 공정한 보상체계를 만들어갈 수 있음을 몸소 느꼈다.

    나는 감정평가서를 작성하면서 단순히 현황이나 시세에만 기초하지 않았다. 사용의 연혁, 공공기여의 실질적 가치, 그리고 장기간 미보상으로 인한 소유자의 정신적 부담까지 고려했다. 물론 법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요소에는 한계가 있지만, 감정평가사의 의견서에는 그간의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여 행정기관이 판단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사건을 통해 나는 감정평가사로서 단순히 가액을 산정하는 전문가가 아닌, 국민의 권리를 찾아주고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데 기여하는 공적 역할을 지닌 전문가임을 절실히 깨달았다. 특히 경제적 손실보다도 억울함을 공감하고, 소통하며, 공공과 개인의 경계에서 균형을 맞춰나가는 감정평가사의 존재가치를 체감할 수 있었다.

    내가 만난 이 땅의 소유자는 말미에 이렇게 이야기하셨다.

    “젊은 감정평가사님 덕분에 이제야 조금은 마음이 놓입니다.
    내 얘기를 들어줘서 고맙습니다.”

    그 짧은 인사가 내가 선택한 직업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앞으로도 나는 더 많은 국민과 마주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감정평가라는 이름 아래 정의롭고 투명한 가치를 전달하는 감정평가사가 되고자 한다. 이 사례는 감정평가라는 숫자 뒤에 숨겨진 사람의 삶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공감과 소통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