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패션,
이제 역사 속으로 흘려보낼 때
‘자주 사고, 빠르게 버리는’ 패스트패션 시장(전 세계 기준)이 연평균 15.5%씩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패션의 화려함에 감춰진 패션산업의 부정적 영향을 아직 많은 이들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환경오염을 넘어 노동자의 인권 문제까지 야기하고 있는 ‘패스트패션’의 실체를 파헤쳐 본다.
‘자주 사고, 빠르게 버리는’ 패스트패션 시장(전 세계 기준)이 연평균 15.5%씩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패션의 화려함에 감춰진 패션산업의 부정적 영향을 아직 많은 이들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환경오염을 넘어 노동자의 인권 문제까지 야기하고 있는 ‘패스트패션’의 실체를 파헤쳐 본다.
글.오정미 연구교수
(부산대학교 기후과학연구소)
패스트패션(Fast Fashion)은 패스트푸드와 같은 개념이다. 최신 트렌드가 반영된 저렴한 가격의 제품이 빠르게 시장에 출시되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패스트패션은 제품의 생산, 소비, 폐기에 관련된 전 과정에 변화를 일으켰다. 더 빠르고, 저렴한 생산을 위해 근로자들은 최저임금도 받지 못한 채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쉼 없이 일하고 있고, 더 많은 섬유를 만들기 위해 자원은 무절제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그로 인한 온실가스와 오폐수로 지구는 병들어 가고 있다.
다큐멘터리 <트루 코스트(The True Cost)> 유튜브 캡쳐
패션산업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조사기관과 측정 방법에 따라 다르지만 약 2~8.3%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섬유에서 유통까지 패션산업의 공급망은 여러 나라와 연결되어 있고, 일부 과정은 배출량을 측정하는 표준화된 방법이 없기에 정량화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지구 온난화를 1.5℃ 이하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현저히 줄어야 한다는 것이다. 패션산업을 다룬 2015년 다큐멘터리 <트루 코스트(The True Cost)>에 따르면, 전 세계 7,500만 명의 근로자 중 2%만이 최저임금을 받고 있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강제노동과 아동노동이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무려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패션산업의 노동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수백만 명의 축구팬을 위해 판매된 90~150달러의 공식 유니품은 하루에 2.27달러를 받으면서 저소득국가의 근로자가 생산한 제품이다.
패스트패션의 과잉 공급은 소비 문화를 바꿨다. 계절에 따라, 또는 필요에 따라 구매하던 의류 쇼핑이 이제는 음식 재료를 사듯이 빈번해졌다. 경제적 계층의 구분 없이 최신 유행 스타일을 구매할 수 있게 됐다. 소비자
입장에서 최신 유행 제품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합리적인 소비일 수 있다. 그러나 빈번하게 구매된 저렴한 옷들의 상당수는 몇 번 입지 않은 채, 때로는 한 번도 입지 않은 채 폐기되어 저소득국가로
수출되고 있다. 게다가 부유국에서 서아프리카를 포함한 일부 저소득국가로 수입된 품질이 낮거나 현지의 기후와 사회문화적 규범에 부적합한 제품의 40%는 상품으로 팔리기도 전에 폐기되고 있다. 특히 폐기물 처리시설이
없는 대부분 지역에서는 버려진 옷이 생활환경을 오염시키며 지역사회의 생태계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이에 그린피스는 수출되는 중고의류를 ‘독이 든 선물’이라고 부른다.
기후위기에 가장 적게 기여한 나라의 사람이 오히려 기후위기에 가장 취약한 환경에 내몰리고 있는 현실처럼, 패션의 대부분 소비는 부유국에서 발생하지만 그로 인한 부정적 영향은 저소득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전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을 경험하며 지구 생태계의 소중함을 깨닫는 동안, 패스트패션은 디지털 혁명과 이커머스 성장과 더불어 울트라 패스트패션(Ultra Fast Fashion)으로 진화했다. 소비자들은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즉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이라는 신조어에 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제품을 더 자주, 더 싸게 구입하고 있다.
2015년 범지구적 의제인 ‘지속가능 발전 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에 맞춰 패션산업은 기업의 환경, 사회, 제품에 관한 지속가능성을 보고하기로 약속했다. 또한 2018년 유엔기후변화협약의 발표와 함께 선포된 ‘기후행동을 위한 패션산업헌장(Fashion Industry Charter for Climate Action)’에 따라, 패션기업들은 2030년까지 재생가능한 에너지원으로 100%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패션기업이 국제사회와 한 약속은 자발적 이행이다. 진행 상황은 자체적으로 보고되고 있고 때로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에 유엔을 포함한 국제기구와 미국과 유럽연합은 패션산업이 지구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새로운 규제를 제안하고 있다. 미국은 패션기업의 윤리와 책임을 강조하는 제도적 장치를, 유럽연합은 지구 생태계를 개선하려는 제도적 장치를 제안하고 있다.
기후행동을 위한 패션산업헌장(Fashion Industry Charter for Climate Action, 2018)
패션의 나라인 프랑스는 의류폐기물을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유럽연합에 「중고의류 수출 금지법」을 제안했고, 대신 낡은 옷을 수선하여 사용할 수 있게 수선 장려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또한 프랑스 내에 울트라 패스트패션 관련 광고를 금지하고, 2030년까지 품목별로 최소 €5에서 €10의 환경부담금을
적용할 계획이다. 현재 이 규제들은 유럽연합과 미국에서 발의되고 시행되고 있지만, 이로 인한 변화는 미국과 유럽뿐 아니라 글로벌 패션의 생산지인 아시아를 비롯한 산업 전반에 걸쳐 일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은 패션산업이 지구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줄여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속도’가 문제다. 지구는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지구에 사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우리가 모두 한 벌의 옷이
만들어지기까지 들어가는 환경적·사회적·윤리적 비용에 대해 고민하고 윤리적 생산과 소비를 실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