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는 ‘과학’일까?
요즘 MBTI 성격 유형 검사를 받아보지 않은 사람들이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로 MBTI가 인기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정점을 찍더니 그 인기가 좀처럼 식을 줄 모른다. 첫 만남에 서로의 MBTI 성격 유형을 소개하는 것은 관례가 됐고, “MBTI는 과학”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MBTI는 과연 ‘과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요즘 MBTI 성격 유형 검사를 받아보지 않은 사람들이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로 MBTI가 인기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정점을 찍더니 그 인기가 좀처럼 식을 줄 모른다. 첫 만남에 서로의 MBTI 성격 유형을 소개하는 것은 관례가 됐고, “MBTI는 과학”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MBTI는 과연 ‘과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글.박종현 과학커뮤니케이터
MBTI 성격 유형 검사는 외향형(E) 또는 내향형(I), 감각형(S) 또는 직관형(N), 사고형(T) 또는 감정형(F), 판단형(J) 또는 인식형(P)의
4가지 분류 기준을 조합해 ISTJ, ENFP, ENTJ, INTP 등과 같이 사람의 성격 유형을 총 16가지로 분류해 결과지를 받아볼 수 있는 검사를 말한다. 여기서 MBTI는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Myers-Briggs Type Indicator)의 줄임말로, 20세기를 대표하는 심리학자인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의 심리 유형 이론을 바탕으로 마이어스와 브릭스가 만든 성격 유형
검사를 뜻한다. 당시 교사였던 브릭스가 딸인 마이어스와 함께 미국에서 유행하던 칼 구스타프 융의 책을 읽고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들의 성격 유형을 16가지로 나눈 것이 그 시초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브릭스가 이 검사를 만든 이유가 흥미롭다. 당시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이었고, 대부분의 젊은 남성들이 전쟁에 참여하면서 노동력이 현저히 부족해졌다. 그래서 미국 정부는 여성들의 노동 시장 진출을 적극 권장했다.
그간 결혼, 육아, 가사만 돌보던 여성들은 갑작스럽게 노동 시장에 뛰어들어야 했고, 이에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그리하여 당시 교사였던 브릭스는 여학생들의 진로 상담을 돕기 위해 MBTI 성격 유형 검사를
만들었으며, 기업들이 이 검사를 통해 여성 직원들의 성격 유형을 파악하고 성격에 맞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힘썼다.
MBTI 성격 유형 검사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에도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검사 과정이 단순하고 바로 결과를 볼 수 있어 편리한 데다 사람들 사이에서 결과의 정확도가 꽤 높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MBTI 성격 유형 검사의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인식이 생기며 인기가 식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를 포함한 일본, 중국 등에서는 여전히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그렇다면 MBTI 성격유형 검사는 얼마나 신뢰성 있는 검사라고 할 수 있을까? 세간의 인식만큼 신뢰성이 높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MBTI 성격 유형 검사는 실험, 관찰, 측정, 가설의 검정과
같은 과학적 방법론을 전혀 거치지 않았으며, 사람의 성격 유형을 16가지로 분류해야 할 과학적 근거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에 브릭스와 마이어스는 심리학자가 아니었고, MBTI 성격 유형 검사가 만들어졌을
당시에는 심리학이 과학의 범주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MBTI는 과학이다”라는 일부 사람들의 주장은 틀렸다고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MBTI 성격 유형 검사가 유사과학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유사과학이
되려면 과학 지식이 아닌 것이 과학 지식으로 거짓 위장을 하고 있어야 하는데, MBTI 성격 유형 검사는 스스로 과학 지식인 것처럼 포장하지 않고 과학적이지 않음을 인정한다. 이런 이유로 유사과학이라 보기도 어렵다.
생각해 보자. MBTI 성격 유형 검사는 분류 기준별로 사고형(T), 감정형(F)과 같이 사람을 두 가지 중 한 가지로만 규정해 버린다. 하지만 사람의 성격은 무조건 사고형 또는 감정형에만 해당할 만큼 단순하지
않다. 어떠한 상황에서는 마치 사고형처럼 원리원칙을 중요시할 때도 있고, 다른 상황에서는 감정형처럼 감정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모든 상황에서 원리원칙만을 중시하거나 감정적이기만 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람의
성격은 구획이 나뉘기보다는 스펙트럼처럼 연속선상에 존재한다고 봐야 하며, 이러한 연속선상에서는 경계선을 설정하기는 불가능하다.
실제로 임상심리사나 심리상담사,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같은 전문가들이 환자나 내담자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목적으로 MBTI 성격 유형 검사를 활용하는 경우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전문가들은 사람의 성격 유형이
어떠한지보다는 정신 상태가 얼마나 안정적이고 건강한지가 훨씬 중요하다고 말할 것이다. MBTI와는 다르게 임상에서 공신력이 있다고 평가받는 성격 검사인 MMPI(Minnesota Multiphasic
Personality Inventory) 검사는 건강염려증, 우울증, 반사회성, 강박증과 같은 정신병리 상태를 측정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그러므로 MBTI 성격 유형 검사에 지나치게 몰입하지 말자. 과도하게 몰입할 경우 본인의 성격을 오직 1가지 유형으로만 규정하는 틀 안에 가두어 버리거나 타인의 성격을 함부로 평가하는 등 여러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잠재력, 그리고 어쩌면 나랑 잘 어울릴 수 있는 타인에 대한 가능성을 제한해 버리는 것이다. 미국의 마이어스 브릭스 재단에서도 MBTI 성격 유형 검사를 구직자 선별,
인간관계, 진로 결정 등에 활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명시하고 있다.
우리는 오직 16가지 중 한 가지로만 분류되는 틀 안에 갇힐 만큼 개성 없고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전 세계 인구가 80억 명이니 성격 유형도 80억 가지가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개인의 다양성과 개성이 존중받아야
할 현대 사회에서는 이것이 사람의 성격을 바라보는 가장 올바른 시선이다. 몰입하거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보다 나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가벼운 도구 정도로 취급하면 적절할 것이다. 주변 사람들과 대화 소재로 삼아
즐거운 대화를 나누거나, 타인에게 장점을 어필하기 위한 용도로 말이다.
우리가 흔히 MBTI 성격 유형 검사라고 알고 무료로 해온 검사는 정식 MBTI 검사가 아니다. 김재형 한국MBTI연구소 연구부장의 말에 따르면, 무료 검사에는 MBTI 정식 문항이 단 하나도 반영돼 있지 않다고. 그러니 16 personalities와 MBTI 성격 유형 검사를 혼동하지도, 맹신하지도 않도록 주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