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슈퍼 선거의 해
‘폴리코노미’와 한국경제
선거는 경제 행위다. 누가 나를 더 잘 살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인지 뽑는 일이라서다. 2024년은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경제 행위가 벌어지는 ‘선거의 해’다. 수출로 먹고사는 대한민국 입장에선 지난 4월 국회의원 총선거뿐 아니라 글로벌 각국의 선거까지 경제 변수로 떠올랐다.
선거는 경제 행위다. 누가 나를 더 잘 살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인지 뽑는 일이라서다. 2024년은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경제 행위가 벌어지는 ‘선거의 해’다. 수출로 먹고사는 대한민국 입장에선 지난 4월 국회의원 총선거뿐 아니라 글로벌 각국의 선거까지 경제 변수로 떠올랐다.
글.김기환 기자(중앙일보 경제부)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11월 “2024년에 사상 최초로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넘는 40억 명 이상이 투표소로 향한다.”라며 신년 세계경제 전망의 핵심 변수로 선거를 꼽았다. 실제 1월 대만 총통 선거를 시작으로
3월 러시아 대통령 선거, 4월 한국 총선, 6월 유럽연합(EU) 의회 선거,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등 선거가 줄줄이 이어진다. 안성배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금융실장은 “보호무역주의가 세계 무역을 휩쓰는
상황에서 포퓰리즘(인기 영합주의)이 극심할 것”이라며 “‘폴리코노미(Policonomy, politics+economy)’ 현상이 극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폴리코노미는 정치의 영향이 커져 경제를 휘두르는 현상을 뜻한다. 선거 승리에만 초점을 맞춘 정당이 선심성 공약을 내걸어 재정을 지출하면서 인플레이션이 극심해지고 국가 부채가 늘어나는 등 문제가 발생하는 점을 지적하는
용어다. 표심을 겨냥한 보호무역주의도 폴리코노미의 부작용이다. 에이미 제가트 스탠퍼드대 정치학과 교수는 블룸버그에 “2024년은 앞으로 인류의 역사를 결정짓는 데 매우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라며 “선거를 통해
게임의 규칙, 금리, 시장의 움직임, 정부 규제, 정책 등 모든 것이 바뀌어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타격도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4월 총선을 치른 한국도 최근 극심한 폴리코노미 현상을 겪었다. 여야는 간병비 건강보험 급여화, 경로당 무상급식 등 재정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빠뜨린 채 고령층의 표에 기댄 공약을 쏟아냈다. 김형준 배재대 정치학과
석좌교수는 “여야 정쟁이 극심한 상황에서 ‘건전 재정’을 위협하는 정치권의 돈 풀기 압박이 거셌다.”라고 분석했다. 앞서 국회가 올해 656조 9,000억 원 규모의 예산을 지각 처리하는 과정에서 삭감한 새만금
예산을 복원하고, 지역구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증액하고, ‘이재명표’ 지역화폐 발행 예산을 신설한 것도 폴리코노미 사례다.
세계로 눈을 돌려도 위협이 첩첩산중이다. 1월 치른 대만 총통 선거에선 반중(反中) 성향 민진당 라이칭더가 당선됐다. 대만 선거는 ‘미중 패권경쟁’의 대리전 성격을 띤다. 민진당 집권에 따라 중국-대만 간
양안(兩岸) 갈등이 고조할 수 있다. 대만은 TSMC를 배출한 반도체 강국이다. 양안 갈등이 한국 수출의 대들보인 반도체 수출 규제로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얘기다. 3월 치른 러시아 대선은 예상대로 푸틴이 당선됐다.
전쟁 장기화와 맞물려 식료품·에너지를 중심으로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다시 부추길 수 있는 요소다.
6월 유럽의회 의원 선거도 폴리코노미의 발화점이 될 수 있다. 지난
6월 6~9일 있었던 27개 EU 회원국을 대표하는 의원 선거에서 극우 정당이 약진했다. 유럽의 극우 정당은 민족주의 성향이 강하다. 경제면에선 보호무역주의 성향을 노골적으로 강화할 수 있다. 단적으로 프랑스는
지난해 유럽 현지 생산 여부를 기준으로 전기차 보조금을 지급하는 ‘프랑스판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적용 대상 차량 명단을 발표했다. 한국은 현대차 ‘코나’만 포함됐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유럽도
미국에서처럼 전기차 공장과 연구개발(R&D) 거점을 설립하는 등 결단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이라이트는 11월 미국 대선이다. 반도체법(칩스법)·IRA가 상징하는 미국판 보호무역주의의 향배를 가를 분수령이라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할 경우 바이든표 IRA를 폐기할 가능성이 있다. 청정에너지
투자가 줄어들면 미국에 전기차 배터리, 신재생에너지 생산 시설에 투자한 한국 기업의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 트럼프는 “모든 외국산 제품에 대한 기본 관세를 10%포인트 추가로 부과하겠다.”라고도 언급했다. 마틴
울프 파이낸셜타임즈 칼럼니스트는 지난해 11월 중앙포럼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재선할 경우 모든 전망이 불투명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동향분석실장은 “트럼프의 특징은 ‘주고받기’식 거래다. 내줄
건 내주되 통상 분야에서 원하는 걸 충분히 얻어내는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폴리코노미는 끈질기다. 한 번 시작되면 쉽게 사라지지 않고 경제에 지속해서 악영향을 미친다. 특히 대외적 요인에 민감한 한국경제는 전 세계적인 폴리코노미의 광풍 속에 더 큰 상처를 입을 수 있다.
UN무역개발회의에 따르면 보호무역주의 여파로 지난해 세계 무역 규모가 1년 전보다 4.65% 뒷걸음쳤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2022년 기준 41%다. 아시아·북미·유럽 수출 비중이
90%에 육박할 정도로 편중한 만큼 수출국 다변화가 폴리코노미에 맞설 1순위 과제로 꼽힌다. 국내 규제부터 풀어 기업의 뒷다리를 놓아주고, 경제와 외교가 뭉친 경제안보 ‘원팀’으로 가야 폴리코노미 파고를 헤쳐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