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임재민 감정평가사
(효성감정평가법인 본사)
내가 처음 감정평가사 시험에 도전하고자 마음먹었던 때는 항해사 3년 차에 접어들면서였다. 해양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다로 나가 세상을 떠도는 일은 그런대로 만족스러웠다. 의무승선 기간인 3년이 코앞에 다가올 무렵, 주변에서는 세상과 단절되다시피 한 바다 위의 인생을 접고 육지에서, 사람들 속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어떠냐고 했다. 특히 부모님의 간절한 권유는 자유로운 영혼을 포기하게끔 나를 회유했다. 많은 시간 고민한 끝에
삶을 바꾸어 보기로 했다. 항해사는 언제든 돌아갈 여지가 있었으므로 잠시 미루어 둔다는 심정이었다. 바다가 그리우면 언제든 다시 돌아가면 된다는 일종의 보험 같은 것이었다.
아쉬움과 불안함이 교차하는 가운데 새로 시작하는 일은 막막함 그 자체였다. 다른 사람에 비해 늦지 않았나 하는 조바심에 진로를 바꾸기로 한 날로부터 나는 단 하루도 독서실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벗어날 수가 없었다.
책들이 수북이 쌓인 작은 책상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디기 힘들었다. 아침에 집을 나서서 밤늦게 돌아오는 생활이 계속되면서 몸무게가 10kg나 줄어들었다. 썩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가 아니었기에 오로지 시간의
싸움에 온 체력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내 모든 에너지는 머리로 소비되었고 점점 말라가는 수험생의 모습은 부모님과 주변의 걱정을 사게 되었다.
그러나 첫 시험은 보기 좋게 낙방이었다. 절치부심한 끝에 그다음 해 합격의 기쁨을 안고 보니 마치 삶의 질곡 한마디를 뛰어넘은 듯한 기분이었다. 새로운 인생에 대한 기대도 커졌다. 곧바로 감정평가법인에 취업이 되어
짐보따리를 싸 들고 서울의 허름한 원룸에 입성하게 되었다. 아마도 그때가 진정한 홀로서기의 시작이었지 않나 싶다.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고, 법인에 적응하고 또 선배들에게 배울 것들은 얼마나 많던지!
마음이 급했다. 법인 측에서는 12월 입사, 3월 입사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했다. 나는 1초의 고민도 없이
12월 입사를 선택해서 곧바로 법인에 나갔다. 최대한 빨리 익히고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밥 먹는 시간조차 아까웠다. 작정하고 책상에 붙어있기로 했다. 실무를 익혀야 했으므로 스스로 시간을 투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감이 나를 옥죄었다. 수험생 시절의 경험이 텅 빈 사무실을 밤늦게까지 혼자 지키는 것에 도움을 주었다. 막내로서 가장 일찍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는 것을 미덕이라 스스로 믿으며 법인에 인정받으려 보낸
1년이었다.
그동안 크고 작은 출장길에 오르면서 감정평가사의 직무에 대한 것들을 나름 익혀나갔다. 직원들이 다 빠져나간 텅 빈 사무실을 밤늦도록 지키는 것을 즐기기로 했다. 다행히도 법인은 꾸준하게 일이 있는 편이라 막내로서
부지런함과 성실함을 인정받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돌이켜보니 나와의 한판 싸움이었다. 내 정서적 감정이 흠뻑 개입된, 무모한 시간이기도 했을 것이다. 일 처리를 빨리 배우고 싶은 만큼 시간만 많이 투자하면 되는 줄 알았다. 물론 그 많은 시간이 헛되지는 않았지만,
감정평가라는 일이 결코 숫자 놀음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성과 냉정이 밑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을 몰랐을 때의 어리석음조차도 분명 나의 자산이 될 것이라 믿으니, 내 무모함도 아름답게 보였다.
수습 감정평가사로서 정신을 못 차릴 그즈음, 소속 감정평가사님과 함께 서울의 한 아파트 상가 법원 경매 목적의 출장을 갔다. 어느 정도 초보의 땟물을 벗었다고 생각할 때였다. 주소를 들고 찾아간 곳은 한 아파트
상가였다. 지은 지 오래돼 보이는 낡은 건물이었는데 나를 맞은 주인은 60대 아주머니였다. 한 눈에도 근심이 가득 내려앉은 얼굴이어서 대하기가 난감했다. 명함을 건네고 나를 소개하자 아주머니는 다짜고짜 눈물을
쏟아냈다. 당황한 나는 어쩔 줄 몰라 아주머니의 손을 잡고 떠듬떠듬 몇 마디 했다. 시어른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지키지 못하고 남의 손에 넘어가는 일은 아주머니에게 가슴이 찢어질 만한 일이었다.
실컷 하소연을 끝낸 아주머니는 체념한 듯 건물 이곳저곳으로 나를 안내했다. 건물과 주변을 사진 찍고 내부를 들여다보고 하는 동안 한 가족 혹은 한 집안을 대대손손 거두었을 건물조차 슬픔에 잠긴 듯한 상황이 참으로
가슴 아팠다. 아마도 그때가 가장 내 감정(感情)이 이성적이지 못하고 흔들렸던 출장이었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은 마음이 그렇게 쓸쓸할 수가 없었다. 세월에 의해 한 세대가 물러가고 그다음 세대가 물려받아 잘 지키고 사는 일은 생각만큼 녹록하지 않음을 경험하고 보니 이것도 인생 공부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사란 좋은 일 나쁜 일 가리지 않고 일어나는 것이 예사지만 그날처럼 안타까운 현실을 마주해야 하는 것은 완전한 타인인 내게도 얼마쯤은 생채기로 남는 일이었다.
출장길에서 돌아와 곧장 법인으로 갔다. 모두 퇴근하여 적막한 사무실에서 실무에 돌입했다. 아주머니의 건물을 빚을 갚고도 남을 정도로 감정평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감정(感情)에
치우치지 않는 감정(鑑定)이야말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지표라는 것을 인식하면서 나는 냉정해져야 했다.
일을 마치고 돌아서는 내게 먼 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며 음료수를 손에 건네주던 아주머니. 그때까지도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모습을 떠올리면서도 나는 철저히 냉정하게 내 본분에 충실해야 했다. 인간
감정(感情)의 한계를 우리의 감정(鑑定)이 떠맡는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기도 하다.
사람 사는 이치, 건물이며 땅이 가진 무한한 이야기를 알게 되는 것이 매번 새롭고 신기하다. 이 일을 하면 할수록 겉으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땅이 말하고 시간이 말하고 역사가 가르친다. 그런
것들을 깨우칠 때마다 감정하고 평가하는 일이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이 출장 이후 아마도 나는 조금 더 성장했을 것이다.
또 한 번은 경상도의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을 찾아갔다. 의뢰 물건은 한눈에도 넓은 과수원이었다. 희한하게도 동네 집들이 그 과수원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오래 방치된 듯 잡풀과 죽은 나무들, 동물 사체까지
등장하는 땅을 구석구석 살피는 동안 과거의 영광을 가늠할 수 있었다. 얼마나 당당히 부를 대물림했을까. 그 동네를 호령할 만큼 넓은 땅이었다.
한 세대가 물러가고 다음 세대가 지나가니 더는 과수원을 유지할 만한 자손이 없었을 것이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을 건사할 후손이 없어지고, 동네에는 노인들만 고단한 삶을 이어갈 뿐 과수원은 저 혼자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스스로 포기하는 땅과 그 땅을 포기하는 인간 사이에서 마치 유령처럼 존재하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들 앞에서 나는 또 심란했다.
쉬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한적한 과수원 마을을 배회하며 적지 않은 감정(感情)에 휩싸였다. 어떤 대가족과 넓디넓은 과수원, 그리고 그 과수원의 온갖 꽃들과 열매들이 한 시대를 풍미했을 상상에 즐거웠다. 서서히
떠나는 사람들, 꽃이 피지 않고 열매가 익지 않는 소멸해 가는 땅. 그렇게 몰락해 가는 한 집안의 영광을 떠올리면 또 씁쓸했다. 말이 없는 땅이 얼마나 많은 말을 하는지 나는 쉽게 그곳을 떠나오지 못했다.
내가 하는 일이 딱히 그렇게 되지는 않겠지만, 비극보다는 희극 쪽에 가깝기를 바라마지않는다. 슬프기보다 기쁜 일이기를, 절망이기보다 희망을 담보로 하는 일이었으면 더욱 보람이겠다. 다시 냉정의 시간이 도래하고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지는 나를 무한히 반복하면서 나는 점점 성장해 갈 것이다.
이제 겨우 2년 차이지만 돌이켜보니 적지 않은 일을 경험했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일은 인생 아닌 것이 없다. 무한히 가르치고 담금질한다. 이것은 항해사 시절에도, 또 감정평가사로 일하면서도 깨닫게 된 공통
덕목이다. 내 앞에 있을 숱한 경험들을 기대하면 사는 일이 뿌듯하고 힘이 나는 이유다. 진정 전문가다운 감정평가사로 성숙해 가는 나를 상상하는 일이 조금은 멋지기도 하다.
미련 가득한 바다를 버리고 뛰어든 땅에도 날마다 바람은 불고 파도가 넘실거린다. 세상은 바다 아닌 곳 없고 바람 아닌 것이 있으랴. 내 앞에 바다보다 더 험한 땅의 바람이 몰려올지라도 나는 온몸으로 맞을 것이다.
아직 많이 살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참으로 다양하고 다채로운 인생사라는 것쯤을 알겠다. 그중에 지금 내가 하는 이 일이 세상의 작은 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하면 좀 더 신중해지고 겸허해진다. 각자 저마다 뛰어든
자리에서 자신이 모르는 사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게 참 인생이지 싶다.
살아있는 땅, 숨 쉬는 건물, 움직이는 재산권 등과의 끊임없는 대화로 나는 점점 전문가가 되어갈 태세를 장전한다. 감정(鑑定)과 감정(感情) 사이, 내가 선택한 이 길이 아름다운 방향이라고 믿으며 오늘도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