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을 보는 눈

반려동물을 위한 아파트의 진화

“야아! 개 짖는 소리 좀 안 나게 하라!” 아파트가 떠나가라 짖는 개 때문에 분노한 남성이 사자후를 터뜨리던 사연이 라디오 방송에 소개된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공동주택에서 개를 키우는 것이 민폐 취급을 받았는데, 강산이 바뀌는 동안 부동산 트렌드도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아끼는 ‘펫팸(Pet+Family)족’을 위해 오히려 집이 진화하는 시대가 성큼 도래한 것이죠.

글. 홍정수 기자(동아일보 편집국)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는 주거공간

한가로운 주말에 아파트 단지나 동네 공원을 거닐다 보면 ‘나만 강아지가 없나?’란 생각이 들 만큼 많은 반려견들이 눈에 띕니다. 실제로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2022년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의식조사’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기른다고 응답한 사람은 25.4%에 달했습니다. 그중에선 개를 키우는 가구가 75.6%로 가장 많았고, 27.7%는 고양이를 기른다고 하네요. 물고기(7.3%)가 3위를 차지하긴 했지만, 이정도면 국민 네 명 중 한 명은 털복숭이 친구들과 한집에서 산다고 봐도 무방하겠죠?

반려동물이 가족의 일원으로 인식되면서 만들어진 ‘펫 프렌들리’ 문화는 주거의 패러다임까지 바꾸고 있습니다. 집을 선택하는 기준에 가격이나 입지뿐 아니라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살기 좋아야 한다’라는 새로운 기준이 더해진 것입니다. 특히 반려동물을 키우는 1~2인 가구가 급증하면서 설계단계부터 반려동물에 특화된 공간 조성도 늘고 있습니다.

단지 안 ‘댕댕이 놀이터’로 산책가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어떻게든 야외공간을 확보하려는 노력입니다. 특히 개들은 좁은 실내공간에 갇혀 지내면 큰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사시사철 산책을 나가 에너지를 뿜어내야 합니다. 마당이 없는 공동주택에 사는 견주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죠.

이런 고민을 간파한 건설사들은 반려동물들의 놀이 공간을 단지 안에 만들며 반려인들의 취향저격에 나섰습니다. C사가 개발한 조경상품 ‘하늘채 펫짐’은 땅굴 미로나 시냇물 건너기 같은 놀이공간과 반려동물 전용 화장실, 음수대 등 각종 특화시설로 가득합니다. H건설도 2023년 9월 입주 예정인 ‘포레나 수원장안’에 미끄럼틀, 장애물 등을 갖춘 ‘펫 프렌즈 파크’를 조성했습니다.

단지 내 녹지가 부족한 오피스텔은 옥상공간을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부산광역시의 ‘서면 데시앙 스튜디오’는 반려동물이 주인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루프탑 멍트럴파크’를 만들었습니다.

‘털복숭이 가족’을 위한 토탈케어 서비스

입주민들을 위한 서비스도 ‘반려동물 토탈케어 서비스’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한 시니어 레지던스 브랜드는 동반 입주한 반려동물과 수강할 수 있는 강좌를 개최하는 등 사람과 동물이 함께 일상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서초구에 자리한 ‘에피소드 서초 393’에는 반려동물용품과 미용, 데이케어 호텔 등 종합 서비스가 가능한 ‘프랑소와펫’이 입점했습니다. 고양시의 ‘힐스테이트 삼송역 스칸센’은 단지 안에 반려동물이 운동과 샤워를 할 수 있는 펫케어센터를 조성할 예정입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끼리는 눈빛만 봐도 통한다고 하죠? 건설사들은 다양한 입주민들이 ‘반려동물’로 하나 될 수 있도록 커뮤니티센터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2020년 11월에 분양된 ‘쌍용 더 플래티넘 프리미어’ 아파트는 글램핑 파크 등 반려동물과 입주민을 위한 커뮤니티 시설을 조성해 인기를 끌었습니다.

반려인은 편안하게, 이웃에는 섬세하게

마당 대신 집안에서 반려동물이 사람과 함께 생활하는 ‘인펫 가구’가 늘면서 현관에도 각종 편의 시설들이 들어왔습니다. H건설은 ‘디에이치 포레센트’에 현관과 세탁실, 욕실을 통합한 ‘H-클린현관’을 시범 적용하고 있습니다. 반려동물이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뒤 간단히 발을 씻길 수 있도록 작은 세면대를 갖추고, 반려동물 물품 수납공간을 별도로 만들었습니다. 다른 건설사의 ‘포레나 펫 프렌즈 인테리어’도 반려동물을 쉽고 편안하게 씻길 수 있도록 깊게 설계한 전용 세면대를 현관에 마련했습니다.

공동주택의 최대 고민인 ‘소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자유로운 커스터마이징으로 이목을 끈 ‘퍼즐주택’은 현관과 중문의 방음 기능을 강화했습니다. 청년 반려동물 가구를 대상으로 공급하는 맞춤형 공공임대주택 ‘견우일가’는 소리에 민감한 반려동물들을 위해 초인종 대신 초인등을 달았습니다.

소형-고령가구 늘수록 성장가능성 무궁무진

펫 프렌들리한 주거공간들은 실제로 분양 경쟁률이나 시세 상승 측면에서 모두 인기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공공임대시장에서도 반려동물 특화 주택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서울시는 지난 2022년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편견을 깨고 품질을 고급화하겠다며 내놓은 ‘서울 임대주택 3대 혁신방안’을 내놓았는데요. 다양한 특화 커뮤니티시설을 조성하겠다며 반려동물 친화 놀이터를 대표적인 사례로 들기도 했습니다. 의료나 유통, 법률 서비스 등 반려동물 가구를 노린 고가 상품 시장의 성장세도 빨라지는 추세입니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이 있죠. 소형가구가 늘고 고령화가 진행되는 추세 속에서는, 입지나 금액 등의 조건이 비슷할 경우 ‘동물과 사람이 공생하는 주거시설’로 수요가 몰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반려가구의 만족도를 높일 뿐 아니라,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입주민의 불편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성장 가능성을 눈여겨봐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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