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직장생활

일잘러도 놓치기 쉬운 3가지 직장 예절

글. 이주호(작가)

“대리님, 혹시 화장실 다녀와도 될까요?”

인턴으로 첫 출근한 날, 장고의 고민 끝에 옆자리 대리님께 던진 질문이었다. 인자한 대리님은 허허 웃으며 “그런 건 안 물어보고 다녀와도 괜찮다.”라고 알려줬다. 물론 나 역시 “안 돼요, 지금 주호 씨가 화장실이나 갈 때입니까?”라는 답을 기대한 건 아니다. 내 질문은 정치적 목적이 다분했는데, “저는 그 정도도 물을 만큼 직장 경험이 없으니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라는 SOS 목적이었다.

화장실 가는 것도 눈치가 보이던 인턴은 어느덧 4년 차 직장인이 됐다. 누가 보기엔 짧디짧은 경력이지만 이제는 팀에서 중간 역할을 맡는다. 그간 회사 생활을 하면서 배우고 느꼈던 직장 예절을 적어본다. 언젠가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던 신입사원부터, 꽤나 직장 생활을 한 사람들도 놓치기 쉬운 직장 예절에 관한 팁이다. 인사 잘하기, 복장 매너 갖추기 등과 같은 뻔한 얘기보단 한 발자국 더 들어간 주제를 다뤘다.

혼잣말 삼키기

“지금 뭐 하려고 했지?”라는 옆자리 과장님 질문을 들었을 때 나는 실제로 거의 같이 고민할 뻔했다. 그러나 그 질문은 몇 초도 넘기지 못한 채 “아 맞다, 이거 보내주려 했지”라는 답으로 스스로 종결됐다.

혼잣말 좀 할 수도 있지, 그걸 꼭 직장 예절로 다뤄야 하냐는 옹호주의자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 상세 기술하겠다. 나는 감히 혼잣말을 삼키는 게 직장 예절이라고 생각한다. 혼잣말은 두 가지 경우에서 동료를 힘들게 만든다.

첫 번째로, 너무 당연하게 직장 안에서 혼잣말은 말 그대로 "혼잣"말이 될 수 없다. 만약 혼잣말 폭행을 일삼는 사람이 상사라면 청자인 후배는 그의 모든 말에 스탠바이 상태여야 한다. 대부분은 이런 예시로 대화가 이뤄진다.

(혼잣말)
“이번 분기 매출이 왜 이 모양이야. 마케팅 애들 다 가져다 판다고 해놓고 팔지도 못했네…. 꿍시렁 꿍시렁”

(업무 지시)
“주호 씨 이번 분기 매출 분석하세요.”

이런 화법이 반복되면 후배는 상사의 혼잣말을 귓등으로 넘길 수 없다. 그의 혼잣말이 곧 내 업무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상사의 모든 꿍시렁에 긴장해 있어야 하는 건 여간 체력을 요하는 일이다. 심지어 위 예시는 그나마 업무와 관련되기라도 했지, “어제 족발을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더부룩하네”처럼 의미와 목적과 정보도 없는 혼잣말도 난무하는데 그건 참 난감하다.

혼잣말을 주의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그것이 긍정적인 경우보단 부정적인 표현이 다반사기 때문이다. “오늘 일이 너무 집중 잘 된다. 날아갈 것만 같아”라는 혼잣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있다면 축하한다. 긍정적인 동료가 있다는 건 모쪼록 행복한 일이니까.

혼잣말은 대게 그 반대의 경우, 그러니까 불평, 불만, 혹은 한숨이 대다수다. 누군가 데드라인을 지키지 않는다거나, 혹은 공격적인 메일을 받았을 때,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은 방식을 만날 때 ‘짜증 난다’, ‘퇴사하고 싶다’와 같은 말을 습관적으로 내뱉는 방식이다. 물론 한두 번이야 공감해 주겠지만, 아주 빈번히 본인 입 밖, 동료 귀에다, 부정적인 생각을 ASMR 하는 건 성숙하지 못한 자세다. 감정이란 건 하품처럼 전염되기 쉬우니 부정적인 언어를 경계해야 한다.

직장에서 퀴즈쇼 하지 않기

직장에서 퀴즈쇼는 두 가지 형식을 갖춘다. 첫 번째는 몰라서 묻는 경우다. “이번 신제품 어떻게 준비되고 있지?”와 같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업무며, 응당 상사가 물을 질문이다. 물음을 받은 사람도 성실하게 답하면 끝날 문제다.

문제는 두 번째다. 정답을 알고 있으면서 묻는 경우다. 뉘앙스부터 다르다. “주호 씨 신제품 론칭해야 할 때 무슨 데이터를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한다고 했지?”, 또는 “주호 씨 지난번 3가지 체크리스트에 어떤 게 있다고 했지?”가 있다. 느닷없이 시작되는 경품 없는 유퀴즈다.

이것은 상대방에게 모멸감을 주는 대화 방식이다. 보통 이런 질문은 무언가 잘못했을 때 받는 질문이므로 정답을 말하면 “주호 씨는 그걸 알고서도 이렇게 형편없이 일했니?”와 같은 답을 받을 수 있고, 모른다고 답하면 “주호 씨는 이 일을 한 게 언젠데 아직도 그걸 모르나?”와 같은 핀잔을 받을 수도 있다. 여기로 가나 저기로 가나 꼼짝 못 하는 게 체크 메이트다.

“우리 사원이 달라졌어요”, “사원은 훌륭하다”와 같은 갱생 프로그램을 찍는 게 아니고서야 잘못하거나, 실수가 있다면, 교정하면 그만이다. 충분히 사리 분별이 가능한 직장인이라면 누구라도 본인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자책하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에게 굳이 ‘퀴즈쇼’의 화법으로 곤란함을 더 해줄 필요는 없다.

동료의 근로 계약을 외우기

직장 예절에 동료의 근로 계약도 알아야 한다면 너무 많은 걸 요구하는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료를 배려하고, 불편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게 직장 예절이라면 나는 이것도 중요한 예절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인턴으로 있던 첫 직장. 겨울을 지나 성과급이 나오는 달이 됐다. 동료들은 저마다 들떠 나름의 계획을 세우던 참이었다. 물론 인턴에겐 성과급은 지급되지 않는다.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우연히 카페에서 만난 옆 팀 대리가 “주호 씨는 성과급 받으면 뭐 할 거야?”라는 순진무구한 질문을 던졌다. 나는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듯 “저는 성과급이 나오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겸연쩍게 말했다. 그러자 거기 있던 대리가 “아 미안, 실수했네”라고 말하며 황급히 다른 주제로 대화를 넘겼다.

비슷한 일을 한 번 더 겪었다. 이번엔 내가 정규직이던 회사였다. 옆 팀 과장이 우리 팀 파견직 직원에게 “~~ 씨는 복지포인트 다 썼어요?”라고 물었다. 연말이라 이월되지 않는 복지 포인트를 소진해야 하는 게 유행하던 대화 주제였다. 인턴이었을 때 나와 달리, 그 친구는 이 상황을 미리 시뮬레이션하지 못했나 보다. 그 직원은 마치 본인이 파견직이어서 분위기를 초치는 게 죄송하기라도 한 듯 “저는 복지포인트가 없어요.”라는 말을 풀이 죽어서 말했다. 그때 나는 확신했다. 동료의 근로 계약을 모르는 건, 상처를 주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비단 근로 계약만의 문제는 아니다. 최근에 무엇을 고민하는지, 최근에 일이 몰렸는지, 경조사는 무엇이 있었는지를 잘 알지 못하면 실수하기 마련이다. 모든 정보를 일일이 메모하고 다닐 필요는 없지만, 실수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은 필요하다. 관심이 없으면 예절을 지키기는 몇 배 더 어렵다.

마치며

사실 직장 예절이라고 다른 예절과 달리 특별할 건 없다. 사전적으로 예절은 “다른 사람이 더 편안하고 안전하게 느낄 수 있도록 행동하는 모든 행위”라고 설명한다. 직장 예절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위 사전적 의미에 준거해서 행동하면 동료에게 예의 있고, 친절하다는 인상을 주기 쉽다. 안 그래도 힘든 회사 생활이다. 직장 예절을 잘 지켜서 동료들과는 사이좋게 지내자.

직장 예절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예절의 '사전적 의미'에 준거해 행동한다면,
함께 하는 동료에게 예의 있고 친절하다는 인상을 주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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